학생의 성장을 우선에 둔 교육과정 운영을 목표로
전문대학은 스스로를 위기 상황에 있다고 말한다. 학령인구 감소, 정부의 차별적 지원 정책, 사회적 인식 부족 등을 그 원인으로 꼽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정작 내부를 돌아보는 성찰은 부족하다. "다른 대학도 다 그렇게 한다",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부실해져가는 교육 현실을 합리화 시키고 있다.
위기를 돌파하려면 외부 환경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내부의 문제점부터 파악하고 개선하는 것이 먼저다. 필자의 경험에서 발견한 전문대학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6개월만 헬스를 하고 싶은데 수영, 골프, 요가까지 포함된 2년 등록을 강요하는 스포츠클럽은 가지 않을 것이고, 돈까스만 먹고 싶은데 우동이나 튀김이 포함된 세트만 판다면 그 식당도 외면할 것이다. 지금의 전문대학의 교육이 바로 이런 모습같다. 그나마 모든 대학이 이런 세트나 패키지식 교육과정을 판매하기 때문에 조금씩이라도 손님이 찾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전문대학은 '전문학사 학위 수여 기관'이라는 정체성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인 듯 하다. 무조건 4학기를 등록하고 수업을 받고 졸업학점을 채워서 전문학사 학위를 수여한다는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생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교육을 지원하는 것은 후순위에 있다.
이에 대한 대안의 하나가 모듈 적층형 교육과정이다. 72학점이라는 거대한 단일 패키지가 아니라, 작은 단위의 모듈을 학습자가 필요에 따라 조립하는 방식이다. 제과점의 쿠키 3종 선물 세트처럼 구성 내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식 오너 셰프를 꿈꾸는 학생에게 2년 동안 졸업학점을 채우기 위해 한식과 양식 조리까지 강요하는 대신, '일식 조리 모듈'과 창업에 필요한 '경영·마케팅 모듈'을 결합해 1년 과정으로 이수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전문학사 학위는 아니더라도, 학습자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역량과 자격을 제공하고 작은 성취를 경험하게 할 수 있다.
어떤 분야의 필수 역량을 갖추지 못한 채 졸업하는 학생을 배출하는 것은 전문대학 교육의 직무 유기다. 그러나 현재 전문대학에는 전공 필수 과목이 없다. 물론 도입했을 때의 우려되는 점도 있지만, 전공필수과목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그래서 전공필수과목을 도입하고, F학점을 받은 전공필수과목에 대해서는 직후 계절학기에 의무 재수강 하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소요되는 교수 인건비 등은 국가장학금의 용도를 유연화하여 충당하거나, 규정을 조정하여 재정지원사업의 예산을 활용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학생에게 추가 비용 부담 없이 졸업 역량의 질을 담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80학점으로 시작된 전문대학의 졸업학점이 72~75학점 수준으로 낮아졌다. 얼핏 보면 공부를 덜 해도 된다는 의미로 읽혀지지만, 잘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다. 가장 합리적으로 생각되는 명분은 대학에서 하는 공부가 과거에는 교수(teaching, 교수로부터 배움)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면 이제는 학습(learning, 스스로 익힘)에 좀 더 비중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대학은 학점을 줄이고 말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익히는 학습을 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학점과 실습 시수만 줄이고 학습 지원은 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대학은 사실상 원가 절감, 즉 등록금 인상의 효과만 누리게 된 것이다. 공식적이고 체계적인 학습 지원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기업은 전문대 졸업생에게 전공 지식뿐 아니라 의사소통, 협업, 문해력 같은 보편적 역량을 요구한다. 하지만 전문대학은 이를 체계적으로 교육하지 않거나, 교양수업 시간에 이론적으로만 다루거나 전공 프로젝트 수업 시간에 팀작업하고 발표하는 정도로만 끝내고 만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공 교수와 교양 교수의 협업 (team teaching) 이 필요하다.
예들들어 전공 과제물을 구글클래스룸 등 LMS를 이용해서 제출했을 때 전공교수 외에 문해력 담당 교양교수가 협업 교수로 접근 권한이 주어진다면 글쓰기 관점에서 학생을 지도할 수 있고 과제를 피드백 할 수 있다. 프로젝트 팀과제를 하면서 회의록을 작성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교양교수가 팀웍의 관점에서 학생을 지도하고 조언할 수 있다. 전공 프로젝트 수업에 직업윤리 담당 교양교수도 참여할 수 있고, 지역사회문제 담당 교양교수도 참여할 수 있다.
왜 교양 과목은 항상 1학년 또는 1학기에 거의 다 마쳐야 하는가? 물론 기초 교양은 저학년에 이수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직업 윤리나 사회 문제 해결 같은 일부 교양 과목은 2학년 2학기 졸업 시점에 수강할 때 교육 효과가 더 클 수 있다.
특히 2학년 2학기에 조기 취업하는 학생들의 경우, 편법적인 학점 인정 대신 마지막 학기에 배치된 교양 과목을 온라인으로 수강하게 한다면 수업 결손 문제를 해결하고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다.
졸업 학점과 수업 시수 축소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개인 학습 시간 보장과 더불어 다양한 역량을 키우기 위한 비교과 프로그램 확대를 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재정지원사업의 예산 중 상당 부분이 비교과 프로그램에 투입된다.
그러나 각 비교과 프로그램의 방향성과 목표가 불분명하고, 성과 달성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단순히 만족도 조사로만 효과를 평가하고, 운영은 외부 업체에 위탁한다. 대학 자체의 전문성 부족과 예산 집행의 번거로움 때문이다. 참여하는 학생도 늘 같은 학생이 반복하거나, 교수의 강권이나 인센티브 때문에 수동적으로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
예산 소진을 위한 백화점식 나열을 멈추고, 대학의 교육 목표와 학생 역량 강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프로그램으로 재편해야 한다.
전문대학의 위기는 외부 환경에서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생존의 열쇠는 내부에 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진 비효율을 걷어내고, 학생의 입장에서 교육과정과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는 미래를 만들 수 없다. 변화는 바깥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