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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Jan 09. 2024

엄마의 이기심으로 아이를 키우지 않기를

일주일에 한 번, 아이가 아프면 한 달에 2~3번 남짓 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영유아방에서 기어 다녔던 아이들이 이제 제법 많이 자라서 걸어다니고,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그곳에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가끔씩, 생각이 복잡해지기도 한다.


요즘 육아. 내가 아이를 육아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 어떻게 자랐을까. 어렴풋 떠오르는 기억들을 살펴보아도 요즘같이 자라진 않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아이들과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이웃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놀기에 바빴던 기억들이 한 켠의 추억에 자리잡는다.


요즘은 아이들이 대부분 '독박 육아'로 많이 자란다. 점점 핵가족으로 구성되다보니 맞벌이 부부인 경우엔 친정이나 시댁 어르신, 도우미분의 도움을 받지만 확실히 내가 어렸을 때보다 아이들의 양육은 '부모'의 주관이 더 많이 커진 것 같다.




맘충. 엄마로선 싫어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내 주변에도 맘충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같이 있다보면 서로 싸울수도 있고, 갖고 싶은 장난감을 갖고 서로 울 수도 있고, 싫어하는 아이를 밀쳐낼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그런 행동들을 전부 '그럴 수 있지.'라고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동생이 없기도 하고, 질투심이 강한 아이는 일요일 예배 때 동생들이 엄마인 내 곁에 와서 나를 잡고만 있어도 견제하는 눈빛이 상당히 강했다. 자주 만나는 아이는 시간이 갈수록 그 경계가 풀어지기도 하지만, 때때로 동생들이 형아가 갖고 노는 장난감이 신기해서 달려들면 여지없이 팔로 밀어내는 아이다.


이번 주말에도 동생을 팔로 밀어서 넘어졌었다. 바로 동생에게 미안해, 시켰지만 하지 않는다. 계속 미안해하라고 시키면 크게 울 것 같기도 하고, 기싸움이 될 것 같아 엄마가 먼저 동생에게 미안해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아이에게 '동생을 밀면 될까, 안될까? 그건 나쁜 행동이야. 다음부턴 밀지 않기로 엄마랑 약속하자. 약속.'하고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그 뒤로 다른 동생이 또 다시 다가왔을 때 팔로 오지말라고 막았지만 밀어내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동생의 엄마 눈에는 밀어내는 것처럼 보였던지 바로 옆으로 다가오셨다. 


동생은 아이가 갖고 놀고있던 장난감을 갖고 싶어했지만, 아이는 함께하고 싶지 않아했다. 그래서 동생에게 '형이 다 놀고 난 다음 갖고 놀게 해줄게. 지금은 형이 갖고 놀고있으니까 기다려줘. 나중에 놀자.'라고 이야기해주었는데 그 동생은 내 손에 있는 장난감을 나와 아이컨택을 계속 하면서 그냥 계속 가져가려고 했다. 


다른 사람의 의향을 전혀 살피지 않는 그 당돌한 모습이 대범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고 나는 더 일부러 그 아이에게 장난감을 전해주지 않았다.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랬더니 나에게 눈웃음을 억지로 씨익 웃고 다른 곳으로 가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며 '알긴 아는데 모르는 척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아이들이 있지만 그 중 타인의 손에 있거나 타인이 갖고있는걸 마구잡이로 가져가는 아이는 많지 않다. 이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아, 자기가 원하는건 그냥 다 받고 살고있구나.' 느껴졌다. 


예전에 어린이집에 입소 상담을 했을 때, 원장 선생님께서 자신이 다른 곳에서 있을 때 두돌이 넘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처음 입소를 했는데 모두 다 자기꺼고, 다 자기마음대로만 해야하는 아이라서 적응이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자랐던 옛날에는 사촌, 이웃 친구들과 가까이 자라면서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특히 연년생이었던 나는 동생과 서로 싸우면서 많이 부딪혔고 그 안에서 좌절하기도 하고, 실패를 겪기도 하고, 무언가의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필요한 규칙을 배우기도 했다.


며칠 전 보았던 금쪽이에서 지나치게 엄마, 아빠를 통제하려고 했던 쌍둥이 여자아이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았다. 친구들을 무서워하고, 어울리지 못하는 금쪽이를 보며 아빠는 직장을 다니며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더 적다보니 무한정 받아주고, 아이들을 최대한 포용해주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무한한 포용이 아이들에게는 더 쉽게 좌절감을 안겨주고, 불안함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아무리 예쁘고 귀한 아이라고 할 지라도,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이 존재하고, 하면 안되는 행동들은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가르쳐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하는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어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아이가 받는 작은 피해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다보면 마음이 참 복잡해진다. 자신의 아이가 예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부모가 어디있을까. 그러나 너무 무한히 받아주기만 하는 것은 오히려 아이에게 독이 되는 것을 알면서도, 양육태도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키우지 않는 것이 힘든 때 인것도 같다.


핵가족이라는 환경적인 이유 때문에 아이가 자라는 데 부모의 성향과 양육태도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시대 인것 같다. 여러 경우를 겪어보면서 더 나를 돌아보게 되고, 그 안에서 나는 나의 이기심과 잘못된 사랑으로 우리 아이가 잘못 자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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