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어의 이웃

by shinystone




살다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이동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의 기숙사로 이사온 것은 이전의 기숙사에서 1년 이상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덕분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의 기숙사는 남성/여성 플로어가 구별되어 있고, 내가 사는 층만 유일하게 그 구별이 없어서인지 기숙사 내에서 혼합(混合)으로 불리는 듯하다. 옆집 사는 친구가 '이건 뭐 게토도 아니고' 하며 자조적인 농담을 던졌는데, 어쩌다보니 일본인은 한 명도 없고 외국인만 남아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기숙사에 거주하고 있는 몇몇 학생들에 의해 다이버시티 선언문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는데, 결국 그들의 다이버시티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서글픈 운명을 마주하면서도 내용이나 읽어봐야지 해서 봤다. '혼합 플로어를 없애고 성소수자 플로어를 만들자'라는 부분을 읽으며, 나는 이 캠페인을 코메디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중요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새로운 것 하나를 더하는 양상의, 소위 '다이버시티'를 표방하는 집행부를 향한 나의 좌절은, 그러나 초국가적 위기 상황을 맞이하며 서서히 변질(?)되어 갔다. 코로나로 인한 생활의 변화들로 인해 불안이 엄습해오기 시작할 때, 그들은 학생들 사이에 정확한 정보가 공유되도록 하기 위한 온라인 공간을 만들고, 학교도 나서지 않는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일들을 자발적으로 해내고 있는, 거의 유일한 조직으로 보였다.



이 조그만 공간에서의 '만남'을 자체적으로 기념하고자 글을 쓰는 것인데, 몇 안 되는 그러한 순간들이 내가 살고 있는 플로어 인물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조금 어리둥절하다. (외출하고 싶은데 갈 곳이 없다) 책을 통해, 소설을 통해, 연구를 통해 타인들의 삶을 읽을 수 있지만, 어쩌다 생활 공간을 공유하며 얼굴을 마주하게 된 사람에게서 느끼는 것에 대하여.



부엌에서 종종 마주치는 미미(가명)에게 한번 말을 꺼내보기로 했다. 그녀는 이번 학기 새로 입주한 경영학 전공 학생인데, 나와 처음 인사를 나누었을 때 자신을 베트남인이라고 소개했던 것을 기억한다. 이름도 일본식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몰랐을 것이다.



"저기, 미미씨가 저번에 베트남인이라고 소개했잖아요."



이 세상에는 고국과 모국, 조국이 따로 따로인 사람들이 많지만 그녀가 굳이 출신을 밝힌 이유가 나는 궁금했다. 그녀를 귀찮게 한 댓가로, 그녀의 어렸을 적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자기 혼자만 다른 것이 싫었고, 외모가 다른 부모님이 학교를 방문하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고. 당시만 하더라도 미미는 베트남식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생 즈음이 되서야 자신의 출신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의 부모님이 난민일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부엌에 있는 화이트 보드에 쓰여 진 그녀의 이름을 처음 봤을 때, 이 플로어에도 드디어 일본인이 들어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 이야기를 나누며, 일본이 2000년대 초까지 인도차이나(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난민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는데 그녀는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부모님이 보트 피플이었다고 알려 주었다. 그녀가 일본 국적을 취득한 것은 불과 올해 2월. 일본 여권을 손에 넣었을 때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녀가 받았던 국적 면접 질문의 일부는, 남자 친구가 있는지의 여부를 포함한, 위장 결혼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편견으로부터 기인하는 실로 어이없는 질문들이었다. 오랫동안 무국적자로 살아온 그녀에게, 국적을 취득한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무방비 상태의 개인을 폭력적인 질문들로 난도질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러시아 여행 이야기도 해주었다. 여권이 없다는 이유로 공항의 외딴 곳에서 한 시간 남짓 질문을 받아야 했을 땐 무서웠다고. 일본의 공항에는 재입국허가서를 가진 사람들이 따로 서는 줄이 있는데, 그 곳에서 한국인을 포함한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본다고 했다. 덕분에 늘 세관을 빨리 통과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며, '정말 그렇네요' 라고 맞장구를 치는 것 외에 건넬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물어보지도 않은 에피소드들을 그녀가 굳이 곁들여 설명해준 것은, 내가 그녀가 살아온 자취를 이해해보려고하지만 아마도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그녀 나름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미미가 자신의 출신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에는, 부모님을 더 이상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된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부모님이 보트 피플이었을 당시, 난민 캠프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고 저런 일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며 생글생글 웃으며 이야기 했다. 난민을 공부하는 입장으로서는 경험할 수 없는, '딸의 입장'에 대해 그 때 처음으로 상상해 보았다.


삶의 중요한 순간에서 어떤 결정을 하든, 거기엔 그 나름의 사정이 있겠다는 것을 내 주변의 디아스포라들의 삶을 응시하며 느끼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이 나라의 난민에 대한 선입견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가져오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다른 누구의 노력보다도, 난민들이 자신의 삶으로 말하게 될 메세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