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도움이 되나요?
공자가 쓴 ‘논어 17편’을 의역하자면 ‘배우지 않으면 늙는다’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지긋지긋해하는 꼰대들이 항상 과거 이야기만 하는 이유는, 유일한 설렘과 영광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배움이 영광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지식과 경험의 발견은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경외감과 설렘을 주는가.
… 이렇게 거창한 마음으로 MBA를 시작했다면 좋았을 텐데, 직장 동료가 영국으로 유학 가면서 질투와 시샘이 많은(!) 나는, 작년 여름 갑자기 MBA에 눈을 돌렸다. 당시 3곳의 MBA를 지원해, 면접을 보았고 응시료 아깝지 않게 합격의 메달을 받았으나 최종 선택한 곳은 서울시립대 MBA다.
학기 시작을 앞두고 주변에 이야기했더니 반응은 두 가지였다.
1. 왜 갑자기 MBA?
2. 왜 서울대, 카이스트가 아니냐(입학 여부와 상관없음)
가까운 이들은 농담처럼 계약직(임원) 야망을 품은 것이냐, 스타트업 창업? 하며 놀리기도 했는데, 애초에 야망 따위는 없었던 것. 흔히 한국에서 MBA 입학의 가장 큰 이유는 ‘네트워크와 학벌 워싱’인데, 더 빠른 승진이나 더 나은 이직을 위한 선택인 듯 싶다.
개인적인 경험일 수 있으나 경력이 쌓일수록 학벌과 네트워크가 강조된다(는 느낌).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리더는 스카이에 편향되어 있고, 자꾸 그들끼리만 비즈니스를 한다(는 기분). 이런 분위기 탓인지, 미국 MBA 영향 탓인지 상위 랭크되는 대학일수록 학비도 덩달아 비싸진다. 카이스트 포함 스카이의 MBA 등록금은 한 학기에 7백만원-1천만원 수준이다.(하버드 MBA 환율 올라서 1년에 1억 수준)
어쨌든 투자 안 하는 일개미는 합리적인 등록금의 서울시립대 MBA가 베스트 초이스였다. (참고로 300만원대) 1학기 보내고, 2학기 접어든 지금 만족도를 따지자면 별 다섯 개 만점에 4개 반 정도.
서울시립대 학부 경쟁력이 높아서인지, MBA 수업의 퀄리티 만족한다. 경영 초보인 나는 기본과 개념을 잡는데 큰 배움을 얻었다. 특히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재무, 회계, 인사관리 같은 수업이 MBA 선택에 후회 없는 만족감을 주었는데, 회사를 움직이게 하는 것, 조직의 주요한 의사결정이 무엇에 의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회사 내에서 매출 원가와 비용, 그리고 영업 이익과 매출을 구분하는 사람, 공시 자료의 주석을 읽는 사람은 회사를 좀 더 객관화해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믹스드 테이프 같은 다사다난한 커리어를 밟아온 나로서는 MBA를 커리어 패스 투자로 보기는 어렵다. 나이도 많고. 다만 제너럴 한 경영 지식을 갖는 것이 현재 맡고 있는 ESG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ESG는 비재무적인 가치로 언급되지만, 현재 기업의 ESG는 재무적인 가치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연히 ESG 사업의 의사결정에도 재무적인 요소가 반영된다.) 그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에게 MBA 종종 추천하는 편. 서울시립대 MBA는 트렌디하지는 않지만 기본 경영 지식에 대한 소양을 기르고자 한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이다.
+ 여담
물론, 어느 대학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요즘 같지 않은 사회적 감수성을 가진 교수님들의 발언들 때문에 수업 시간에 화가 날 때도 있다. 여전히 금성화성남녀 이야기하거나 결혼 개그 같은 거, 재미도 없고 유익하지도 않다. (부디 배움만 주세요!) 상위 랭크된 MBA는 좀 나았을까, 하는 궁금증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