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을 처음으로 기록한 날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회사원 시절, 내 시간은 단순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미팅을 준비하고, 보고서를 쓰고. 바쁘긴 했지만, 나름 성실하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고, 일도 곧잘 해냈다.
그때 나는 시간관리라는 말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그냥 열심히 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다 경계가 흔들리기 시작한 건 코로나 때였다.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면서 내 시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처음엔 괜찮았다. 출퇴근 시간이 줄고,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하루가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24시간 풀타임 워킹맘이자 육아맘을 동시에 해야 하는 테마파크가 열린 느낌이었다. 회의 중에도 잠긴 문 밖에서 아이가 엄마를 부르고, 업무 중간중간 간식을 챙기고 공부를 봐줘야 했다. 일하는 건지, 육아를 하는 건지, 나조차 헷갈렸다.
그래도 그때는 괜찮았다. 회사라는 울타리가 있었고, 팀장으로서 맡은 역할이 있었고, 고객사 일정도 있었다.
조금 흔들려도 금세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진짜 시간관리의 어려움은 2023년, 독립을 하면서 시작됐다.
“어차피 재택근무하던 거였으니까 뭐 크게 다를 게 있겠어?”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혼자가 되고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출근 시간도 내가 정하고, 업무 시간도 내가 정하고, 마감도 내가 정하는 삶.
처음엔 이게 너무 좋았다.
“아, 이게 프리랜서의 자유구나.”
낮에는 운동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책도 읽고. 밤에 집중 잘 될 때 일하면 되니까, 시간은 충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하루가 어디로 갔는지 모를 불안이 차올랐다.
해야 할 일은 자꾸 늘어나는데, 손에 잡히는 건 없고.
루틴이 흐트러지니 삶 전체가 엉켜버렸다.
“내가 오늘… 뭐 했더라?”
회사 다닐 때는 일과 휴식이 자연스레 분리되어 있었는데, 독립 후엔 그 경계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시간가계부’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돈을 관리하려면 가계부를 쓰듯, 시간을 관리하려면 시간가계부를 써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순간 묘하게 촉이 왔다.
“이거, 뭔가 느낌 오는데…?”
“오늘 하루 뭐 했는지 다 적어보세요.”
그 간단한 미션이 낯설고 어색했다.
게다가 15분 단위로 쪼개 적어보라는 말에 더 당황스러웠다.
“어? 왜 이렇게 휑하지…?”
그게 처음의 느낌이었다.
한 줄 한 줄 일정이 빽빽하게 적히는 게 아니라, 군데군데 덩어리로 비어 있는 걸 보니 가계부가 휑했다.
하루를 대충 살아온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씁쓸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1년쯤 되는 시간 동안, 나의 시간 사용 습관을 하나하나 돌아보기 시작했다.
아직도 나는 초보 시간부자다.
누군가를 가르칠 만큼 능숙하진 않지만, 스스로 훈련하면서 하루하루 시간을 경영하려고 애쓰고 있다.
시간가계부를 쓰면서 깨달은 게 있다.
코로나 때와 독립 후의 시간관리 차이는 ‘목표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는 걸.
이 글을 쓰다 보니, 1년 전 처음 시간가계부를 시작하던 그때가 떠오른다.
시간부자와 처음 만났던 순간 말이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시간 앞에서 나처럼 고민하고 있다면, 이 기록이 작은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시간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채우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 깨달음 덕분에, 나는 오늘도 조금씩 ‘시간부자’가 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