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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여행 Aug 19. 2021

더이상 치료방법이 없습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의학적 치료는 없습니다. 원하신다면 호스피스 병동을 연결시켜드릴께요"

치료가 끝이라니? 그리고 또 호스피스는 무슨 말인지!

도대체 내가 무슨 이야기를 들은거지?


엄마는 갑작스러운 구토로 두달 전에 갑자기 다시 병원에 왔지만, 당시 멀쩡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치료 방법이 없다니. 가슴이 쿵쾅거리고 쉴새없이 눈물이 흘렀다.


의사선생님, 제발 알아듣게 얘기좀 해주세요.


엄마는 2년전 이맘 때 담도암 판정을 받았다. 분명 수술도 성공적이었고 항암치료도 잘 됐었다. 

그런데 두달 사이에 이렇게 급속도로 나빠지다니. 

의사의 말에 그동안 잊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담도암과 관련된 외면하고 싶었던 통계들 말이다. 

절개가 가능한 담도암의 경우 3년 생존율이 45~60%이며, 절개가 불가능한 경우 7개월이라는 수치. (출처 : 서울대학교 의학병원). 그만큼 담도암은 예후가 좋지 않은 나쁜 암이었다.



담도암은 조기발견이 어려운 암 중 하나다. 가장 대표적인 증상인 황달이 나타날때는 이미 어느정도 암이 진행된 상태다. 처음에 엄마가 동네 병원에 간 것도 황달 때문이었다. 당시 엄마는 하루종일 피로감을 느끼고, 붉은 소변까지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늘 그렇듯 피곤해서 그렇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담도암으로 돌아가셨다는 동네 아주머니가 엄마의 모습을 심상치 않게 봤고, 결국 등떠밀리다시피 병원에 간 것이다. 나는 왜 그때 엄마의 병을 좀 더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담도암은 1기, 2기 라는 숫자 보다 암의 발생 위치가 더 중요하다. 

위치에 따라 수술 가능여부가 정해진다. 수술 할 수 있는 확률 조차도 절반에 불과한데, 다행히 엄마는 수술이 가능한 위치였다.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천운이었다. 

의사는 상위 5%로 수술이 잘 됐다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이대로 관리만 잘 하면 문제없다는 말과 함께. 

상위 5%로 성공적인 수술이었다니! 

2019년 여름은 천당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한 계절이었다. 암 진단에 하늘이 무너져내릴 것 같았던 우리는 성공적인 수술 덕분에 다시 기운을 차렸다. 

엄마는 다시 태어난 것 같다며 어린 아이처럼 좋아했다. 

암을 제대로 공부하고 이겨내자고 마음 먹었다. 




그뒤로 3~4개월에 한번씩 병원 정기 검사를 했고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가 계속됐다. 

그리고 수술 후 1년 반 뒤에는 암에 걸리기 이전의 모습까지 회복할 정도로 건강해졌다. 혼자 지하철도 타고 목욕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엄마 이제 다 나았어, 걱정하지마" 엄마한테 전화할때마다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암은 역시 무서운 존재였다. 방심하는 틈을 용케 찾아내 다시 파고 들고 말았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엄마는 음식을 먹지 못했다. 먹기만 하면 구토를 했다. 녹색 빛이었다. 심상치 않았다. 

그날 바로 응급실에 입원했다. 의사는 담즙이 막혀있다며, 코에 플라스틱 관을 연결했다. 콧줄이라 불렀다. 

엄마는 하루 종일 답답한 콧줄을 껴야 했다. 콧줄을 껴야만 음식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암세포가 조금 생겼다며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재입원 두달만에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할 상황이라니! 

의사말로는 이미 암이 복부까지 전이된 상태라고 한다.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다고 했다. 

나이들수록 운동 신경이 둔해져 암세포도 번식할 힘이 없다는데 도대체 엄마 몸속의 암세포는 뭘 먹었길래 그렇게 무서운 속도로 커질 수 있었던 건지. 



"엄마는 얼마나 남으신거에요?"

우리 가족들은 힘겹게 말문을 떼었다. 

"그건 아무도 몰라요, 당장 내일 돌아가셔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태입니다"


살아오면서 들은 가장 잔인한 말이었다.  

여든이 다 된 아빠와 언니, 나는 그저 할말을 잃은 채 병원 한구석에 멍하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엄마는 따뜻한 햇살을 좋아해서 이렇게 병원 휴게실에서 2~3시간동안 멍하니 '햇빛멍'을 자주 했다.  엄마의 뒷모습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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