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버이날이었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며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들을 본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살았던, 1년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우리집'이라 불렸던 그 곳으로 가는 길이다. 사람 가득한 1호선 지하철도 그대로고, 흔들거리는 65번 버스의 손잡이도 그대로다. 이번 정류장이 내릴 정류장이라며 친절한 목소리로 안내해주는 목소리도 물론 그대로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내 옆에 앉아 무릎 위에 비누 카네이션을 놓아 둔 여자와 그 사람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내 모습 뿐이었다.
학창시절 수없이 지나다녔던 집 앞의 육교를 건너 24시 김밥집과 안경점, 편의점을 지난다. 안경점 앞에 서 있는 나이 든 사장님도 주름살이 약간 더 생긴 것 외에는 그대로다. 어릴 때는 보이지 않던 자영업자의 고민이 함께 보이기도 한다. 매년 봄에 꽃피던 목련나무와 조그맣게 초록이 우거진 정자, 기억나지 않는 친구들과의 대화들이 남아있는 놀이터도 지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옅은 된장찌개 냄새가 난다. 이건 엄마의 된장찌개 냄새다. 십 수년간 된장찌개를 먹던 날이면 현관문 앞에서부터 맡을 수 있던 그 냄새. 그 사이로 갈비찜 향도 약간 섞여 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서니 소파에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음"하며 괜히 더 자상하게 웃으며 반가운 티를 내는 아버지가 보이고 싱크대에 쏟아지던 물소리가 끊긴 후 금세 나타나 "어머, 일찍 왔네?"라며 반기는 어머니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나를 맞이한다. 여전히 그대로인 이 모습도 너무나 익숙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약간 낯선 이유는 무엇일까. 아버지의 '음'은 조금 더 길어져있고, 어머니의 목소리는 조금 더 높아져있다. 아마 내 옆에 서서 아직은 수줍게 웃고 있는 아내 때문이겠지.
다음 날 오전 11시 즈음, 도시의 흔적은 사라진 지 한참되었고 산과 저수지를 끼고 있는 길을 지나며 창문을 여니 풀냄새가 코 끝을 간지럽힌다. 이제는 아파트 대신 건장한 장정들처럼 줄지어있는 메타세콰이어 나무들 사이를 통과한다. 곧 새벽같이 달려 온 운전대를 놓아도 될 때다. 옆 자리에 앉아있는 아내의 손에는 땅에 심을 수있는 붉은 카네이션 생화가 놓여 있다. 이내 운전석 옆으로 목가적인 분위기의 전원주택이 한 채 보인다. 평화롭다. 그럼에도 단순히 서정적인 감상만 하기에는 한 때 나에게 인생 최고의 긴장감을 선사했던 곳. 낯설었지만 이제는 제법 익숙한 장소가 된 이 곳을 보며, 아내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마당에 주차를 하고 아침부터 대신 애써준 차량의 시동을 끄고 나니 옆자리는 이미 비어 있다. 차창 밖으로 내가 없던 시절,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몇 년 전의 이 곳의 모습을 본다. 두 모녀의 눈동자에는 반가운 미소가 꽃피어 있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씨익 웃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가 서 있다. 하얀 솜사탕같은 강아지 두 마리 또한 콩콩 뛰어다니며 주변을 신나게 맴돈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남편 또는 사위라는 존재가 함께 왔다는 것 뿐. 괜히 침을 한 번 삼키고 차 문을 연다. 아내를 제외한 모든 눈동자들이 나를 향한다. "오느라 고생했다"며 악수를 건네시는 장인어른의 두툼한 손과 "잘 지냈어?"라고 묻는 장모님의 앳된 목소리가 정겹다. 귀여운 말랑이와 보들이도 더 이상 나를 보고 짖지 않는다. 배고프다며 밥 먹자는 아내의 말을 따라 내 시선은 마당 옆의 정자로 옮겨진다. 이 평화로운 땅에서 자라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손을 거친 명이나물과 매실 장아찌, 김치 겉절이는 이미 그것만으로도 입 안에 침을 한 가득 고이게 한다. 곤드레밥에 직접 담그신 간장을 힘차게 비빈 다음 고기를 한 점 올린다. 미소가 피어오른다.
새해의 초입이자 겨울의 끝자락이었던 2월, 나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했다. 결혼이라는 건 무엇일까. 결혼이라는 것은 정확한 의미인지 우스갯소리인지는 몰라도 ‘영혼의 결합’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버지는 종종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멋진 표현이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이라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이지만 두 사람 각자의 '영혼'이라는 비현실적인 무엇인가가 결합해야한다는 것. 거창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느낌마저 드는 이 영혼이라는 단어 안에는 서로를 향한 깊은 '사랑'이 들어있으리라.
돌이켜본다. 2년 전, 800킬로미터에 이르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그 시절. 나는 지금의 아내를 그 길 위에서 만났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 코로 들어오는 깨끗한 날숨, 어떤 말을 하는 내 입과 어떤 목소리를 듣는 내 귀, 어깨와 등에 놓여진 무거운 배낭과 가슴과 허리를 조이는 가방끈, 그리고 내 손에 닿는 모든 것과 두 발로 걷는 모든 길이 그녀에게 향하고 있었다. 이 길이 산티아고로 향하는 것인지, 그녀에게로 향하는 것인지 분간조차 어려웠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가슴 벅찬 풍요 속의 혼란을 겪었다.
누군가와 이토록 강력하게 연결된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으레 그렇듯, 그 당시의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녀와 영혼이 결합된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그녀 그 자체라고 느껴질 정도로. 우리가 가진 것이라곤 등에 메고 있던 배낭 뿐이었지만 그녀와 함께 있을 때 내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했고 즐거웠다. 지금까지 살아오길 너무나 잘 했고 더 이상 삶을 지속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모든 건 내 옆에서 함께 걸어주었던 그 영혼 덕분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결혼만이 우리에게 유일하게 남은 단 하나의 과업이라고 생각했다.
“헤겔에 따르면 결혼은 인륜적 관계이다. 여기서 인륜적 관계라는 의미는 결혼이 인류의 종으로서의 생명의 유지와 보존을 위한 성적 관계로서만 파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칸트와 같이 결혼을 시민사회의 단순한 계약관계로서만 파악하여 서로의 성기를 상호간에 사용하는 것과 같은 관계로서 파악하는 것도 잘못이다. 나아가 사랑이라는 감정에만 결혼의 본질을 두고자 하는 것도 잘못이다. 결혼은 이상과 같은 모든 것을 포함하면서도 사랑과 신뢰를 토대로 생활 전체를 공동으로 영위하는 관계에서 성립하는 사회적으로 승인된 관계인 것이다.” <헤겔사전>
결혼식이 끝났다. 끝은 또 다시 새로운 시작이 된다. 그렇게 결혼식은 끝났고 우리는 결혼생활, 부부생활 혹은 신혼생활 등으로 불리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헤겔의 관점에서 따라가보면 나와 아내는 이제 사랑과 신뢰를 토대로 '생활 전체'를 공동으로 영위해야 한다. 생활 전체라는 말 속에는 의, 식, 주와 더불어 경제 행위가 포함되어 있고 나아가 서로의 가족, 친구, 지인과 같은 인간관계도 포함될 것이다. 물론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것들이 포함될 수도 있고, 더 적은 범위에서의 것들만 포함시키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를 떠나 이 대목에서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는 ‘공동’이라는 단어에 있다. 언뜻 보기에는 든든하지만 무서운 단어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생활 전체를 공동으로 영위하는 것이 힘들어질 경우 이는 결혼생활 자체를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돈이 될 수도 있고, 성격 차이가 될 수도 있고, 가족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너무나 다양하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했다. 가정을 꾸려가는 과정에 있는 신혼부부들의 결혼생활에도 일맥상통하는 문장이 아닐까 생각했다. 공동으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내야 한다는 것. 그것은 분명 먹는 것에도 똑같이 적용될 일이었다.
나는 헤겔이 이야기한 공동으로 영위하는 생활 전체 중에서도 식(食), 다시 말해 우리가 먹는 것들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신혼부부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함께 먹고 즐기는 것일 테다. 대다수 신혼부부들이 결혼 후 살이 찐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나 또한 몸무게가 무려 6킬로그램이 늘었다. 그렇게 엄청난 속도로 살이 불어나는 동안 식탁의 변화가 눈에 띄었다.
결혼 전, 부모님과 함께하던 식탁에는 항상 국물이 있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면 국물이 없는 경우를 본 적이 거의 없다. 한식 하면 빠지지 않는 된장찌개, 김치찌개, 꽁치찌개, 참치찌개, 어묵탕, 사골곰탕, 토란국, 탕국, 떡국 등 종류만 해도 나열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국물 요리를 먹었다. 부모님은 식탁에 앉으시면 항상 국물부터 한 술 뜨셨었다.
한편 아내는 가족과의 식사에서 국물 요리를 그렇게 자주 접하지는 않았었다고 했다. 국물이 없는 한식은 잘 상상되지 않는 편인데, 장모님의 식탁을 직접 경험해보니 그 대신 또 다른 차원의 한식을 접할 수 있었다. 장어구이, 문어숙회, 백골뱅이, 대게찜처럼 그간 집이라는 공간에서는 거의 겪어보지 못했던 음식들 혹은 오리지날 한식보다는 약간의 서양식 스타일이 섞인 밤스프, 토마토 마리네이드, 버섯과 발사믹을 두른 토스트같은 것들이 그랬다.
어버이날이 지난 후 며칠 뒤, 그 날은 아롱사태 만찬을 즐겼다. 어머니가 주신 아롱사태를 아내는 정성껏 삶아 수육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장모님께서 주신 무절임과 겉절이, 그리고 아내가 만들었다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구절판까지. 그 음식들이 다같이 모여 제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담백하고 쫀쫀한 식감의 아롱사태 수육과 자극적이고 아삭한 식감의 무절임을 함께 먹는다는 것. 그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음식을 한 입에 넣는 단순한 행위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위대한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스페인에서 처음 마주친 우리의 첫 만남 같기도 하고, 점차 가까워지던 한국에서의 연애 시절 같기도 했고, 순간순간 정적이 흐르는 상견례 자리 같기도 했다. 결혼은 이렇게 두 사람과 두 사람의 가족들, 그리고 그 가족들의 음식마저 결합시킨다. 그 음식을 나누는 순간이 새로운 가족이 된 한 부부이자 가정에게는 큰 즐거움이고, 그렇게 또 두 사람의 영혼은 더욱 끈끈히 결합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