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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넛버터B Sep 15. 2023

7. 덜-미라클 한 모닝

그럼에도 불구하고


6시가 무슨 미라클이야.

(이런 T발)


며칠 전부터 6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말에. 다른 방을 쓰는 배우자님께서 "왜"냐고 물었다. 이런 T 같은 남편을 보았나. 나름의 미라클모닝을 시작해 보려 한다는 말에 그분께서는 6시가 무슨 미라클이냐며. 대화의 맥을 끊었다. 마음에 일렁이는 저항감을 최대한 감춰 보려 하지만 자동적으로 말이 튀어나온다. "최종 목표는 5시거든."


그에게 가진 강력한 저항감과 그로 인해 발생한 오기도 졸려움 앞에선 모두 주르륵 녹 듯 흘러내렸다. 낮에도 졸려웠고. 밤에는 더 졸려웠다. 오랜만이었다. 한 가지 생각에 지배받고 있다고 느껴지는 감정. "그저 자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9시에 잠든 날도 있고, 10시에 잠 날들도 있고. 대략 그 쯤이면 못 견디고 잠에 빠져 들었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탐색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냥 침대로 빨려 들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밤이 좋았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반가웠다. 사랑에 빠진 사람 마냥 밤에 자는 잠을 기다렸다.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결국 너였다. 그게 내겐 밤이고 잠이 되었다.


여전히 둘째와 함께 자고 있어 새벽에도 몇 번씩 눈을 뜨거나 작은 소리에도 정신이 들기를 반복한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누가 둘째를 업어가도 모를 밤들의 연속이었다. 꿀-잠의 정의를 이제야 깨달았다.


잃은 것과 얻은 것이 분명했다. 밤이 가져다주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여유 자체. 의미는 없지만 재미있는 휴대폰 놀이. 일탈 같은 야식. 혹은 넷플릭스와 맥주 같은 것들은 사라졌다. 그건 너무 가혹하지 않냐고 친구가 말했다. 하나도 그렇지 않다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어쩌다 누리는 밤의 시간은 지난날의 밤보다 훨씬 더 즐거웠으니까 말이다.


밤 사이 숙면으로 뇌가 깨끗이 씻겨 나가고. 편안하게 개운하게 아침을 맞이한다. (brainwash : 실질적으로 우리의 뇌는 자는 동안 쪼그라든 뉴런을 뇌척수액이 흘러들어와 씻고 빠져나간다.)

더 자고 싶다는.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았다는 질척한 욕망 따위는 없다. 참으로 축복이다.







'나의 6시'에는 약간의 규칙이 있다. 휴대폰을 보지 않을 것. 집안일을 하지 않을 것. 나만을 위해 시간을 쓸 것.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은 불시에 나를 요하는 이들이 없다는 뜻이므로 아주 편안하게 시간을 쓸 수 있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늘 '자유'를 갈구했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자유'가 있었다니.

그렇다면 이 자유를 어떻게 누려야 할까? 현재 가장 목말라 있는 것들을 두리번거려 본다.


첫째로 책을 읽기로 했다. 독서 시간이 부족하다고 늘 느꼈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지속되는 새벽의 힘이란 이런 걸까. 한 달이 걸렸을 책 분량이 일주일이면 끝났다.

둘째로 산책을 했다. 눈을 떠서 잠시 창 밖을 바라보며 스트레칭을 하다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아주 작은 점 같은 사람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며칠을 지켜보다 산책을 나갔다. 오늘은 이 길로. 내일은 저 길로. 무언가의 생각이 떠오르면 애써 떨쳐 낸다.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이 산책의 목적이었으니까.


그렇게 새벽의 시간들이 채워진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말이다.

오늘은 알람 없이 4시  50분에 눈이 떠졌다. 역시나 개운해하며 거실로 나왔다. 차를 한 잔 가지고 거실 책상에 앉는다. 책도 보고 글도 쓴다. 새벽의 색깔도, 새벽의 향기도, 새벽의 분위기도 참으로 좋다. 오랜만에 설렘을 느껴보는 나날들이다.








Photograph source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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