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품명품이 되고 싶다면
미투 브랜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50명이 넘는 사장님들이 앉아 있는 강의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장사에 대한 신념의 집약체라고 느껴지는, 장인정신으로 똘똘 뭉쳐 메뉴 하나를 브랜드로 만든 거장.
마케팅 없이도 고객에 대한 진심으로도 성공한 장사를 할 수 있다는 그 멋진 거장의 강의를 듣기 위해,
영업을 쉬고, 직원들의 근무표까지 조정해 가며 모인 사장님들.
모두가 그의 입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화면 하나를 공유했다.
"여러분, 이 중에서 어떤 사진이 저희 매장 사진일까요?"
평소 그 거장의 매장을 줄 서서 여러 번 가봤던 나는 신중하게 사진을 들여다봤다.
그릇, 담음새, 메뉴. 전부 그 매장이었다.
단호하게 말하긴 어려웠지만 전부 다는 아닐 거니,
3번? 아니면 5번쯤?
8장의 사진 속에는 모두 같은 음식이, 같은 구도로 담겨 있었다.
이건 참고 수준도, 오마주도 아니었다. 복사였다.
정답은... 사장님들이 웅성거렸다.
"1번이요?"
"4번? 윗줄?"
"8번!!"
그 순간, 거장이 말했다.
"정답은 없습니다."
강의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헉...'
'아...'
하는 짧은 숨소리와 함께,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나 역시 충격을 받았다.
내 메뉴가 잘 팔릴 때, 근처 가게에서 따라한 걸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웃고 넘겼다. '비슷하겐 해도, 따라올 수는 없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아니었다.
누가 봐도 똑같은 사진.
정답이 없다는 말이 오답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 거장은 다정하고 단정한 눈빛으로 사장님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말했다.
"이 브랜드들은 저희 매장을 따라한 미투 브랜드들입니다. 맞습니다. 따라 했죠. 하지만 이 한 상에 차려진 철학, 노력, 고뇌 같은 본질은 생각하지 않았어요. 고객님들은 다시 우리 매장을 떠올릴 거고, 결국은 진짜를 인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매장들의 매출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곤 또 다른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이건 좀 다르죠? 저희랑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장사도 잘되는 것 같아요. 여기는 저도 한번 가보고 싶어요. 사장님의 철학이 보여요. 단순히 따라 한다고 이길 수 없습니다. 그 안에 본질과 이해가 있어야 하니까요."
나는 그 말을 듣고 헛웃음이 났다. 아, 맞다. 나는 그걸 너무 잘 알면서도 잊고 있었구나.
그리고 그 순간 떠오른 한 사람이 있었다.
얼마 전, "스승님, 사부님"이라 부르며 다정하게 다가왔던 사람. 우리 가게의 주요 메뉴 레시피를 싹 배워가더니, 창업 이후 연락을 끊었다.
그의 가게는 지금 잘되고 있다고 들었지만, 나는 가끔 그 사람의 가게를 들여다볼 때 실망스러웠다. 1년이 지나도 똑같다. 그는 음식에 진심인 사람일까? 그는 우리 가게의 신념이나, 그 메뉴에 대한 고민의 어느 한 조각도 담지 못한 채, 단지 글로 적힌 레시피만 가지고 갔다.
그때 나는 그가 그걸 베껴간 것보다, 가지고 가서 그냥 썼다는 것에 더 상처를 받았었다.
하지만 거장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아, 그릇이 안 되는 사람이었구나. 그냥 복사기였구나. 그 사람의 최고 가치는 존엄이 아니라 돈이구나.
인간의 존엄, 고뇌, 가치관 같은 것들을 돈 밑에 묻어두고 모른 체할 수 있는 사람.
그는 그냥, 돈 밝히는 복사기였구나.
거장님의 말을 들으며 알게 됐다.
그릇이 안 되는 사람에게 철학을 기대한 내가 어리석었구나.
나는 따라 하는 사람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으로 남기로 했다.
우리는, '벤치마킹'이라는 말 뒤에 숨어 창작자의 고뇌까지 베껴가는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좋은 벤치마킹은 ‘존중’ 위에 서고 역사까지 만들어 내지만, 저작권 침해는 얄팍한 ‘편의’ 위에 앉는다.
누군가의 철학과 존엄, 고통과 성장의 기록을 철학 없이 가져가는 건 ‘참고’라는 이름의 무단 복사다.
음식의 퀄리티를 위해 수많은 요청에도 직영점조차 내지 않는, '거장'이라는 이름이 너무도 어울리는 그런 장인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장치가 더 확대되길 바란다.
아니, 사실은 그 장치조차 필요 없는 사회가 되길 소망해 본다.
저작권은 그 경계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저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법이 아니라, 사람의 삶과 진심, 그리고 존엄을 지켜주는 ‘선’이다.
그 선이 더는 희미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적어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 앞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