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를 다시 보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꺾었다”

by 박온유


파묘를 다시 보다.


이 문장은 단지 영화를 다시 봤다는 말이 아니다.


이는, 나에게 있어 처음 본 그 장면을 다시 꺼내어 내 마음의 제단에 올려놓는 일이며, 그 기억을 다시 붙잡아 오늘의 언어로 선언하는 일이다.


나는 이 영화를 처음에는 당연히 스릴러 영화인 줄 알고 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장면이 쌓이고, 문장이 던져질수록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외피 속에 숨겨진 상징과 은유는 명백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며, 역사적인 통증을 안고 있었다.


그 순간부터, 내 시선은 단지 장르적 긴장감이 아닌 진실을 파헤치는 윤리적 시선으로 바뀌었다.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깊게 남았던 건, 처음 보았을 때도 그랬듯이 단연코 “여우가 범의 허리를 꺾었다”는 말이었다.


그 문장은 곧, 이 땅의 등뼈를 끊은 식민의 방식이자, 아직도 제거되지 않은 저주의 실체였다.


이번에 다시 마주했을 때, 나는 그 상징을 더욱 선명하게 재확인하였다.


그 장면은 설화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것은 단지 일제의 악랄한 계획이 아니라, 그에 동조하고 스스로 앞장선 자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의 상징이었다.


한반도의 산맥은 단지 지리적 곡선이 아니며, 그 곡선을 따라 흐르던 민족의 정기 위에 박힌 쇠말뚝은 기억을 지우기 위한 폭력의 표식이었다.


나는 기억한다.


강점기의 억압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우리 내부에서 배신을 선택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름만 바뀌었고, 얼굴만 젊어졌으며, 그 후손들은 오늘도 대한민국의 중심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


그들은 역사를 지웠고, 그 공백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새겼으며, 무지를 교육이라 부르고, 권력을 정의라 착각하게 만들었다.


나는 일본인을 미워하지 않는다.


모든 시대에는 악인이 존재하며, 한국 역시 그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은, 그 악과 손을 잡고, 스스로 더 악해지기를 선택한 자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끝까지 파묘해야 할 대상이다.


이 영화는 경고한다.


진짜 저주는 무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무덤을 끝까지 덮으려는 자들에게서 비롯된다.


그들은 땅을 빼앗았고, 권력을 세습하였으며, 기억을 묻어버렸다.


그리고 잊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잊지 않는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화해와 통합은 처벌 이후에 오며,


정의 없는 사랑은 위선이고,


책임 없는 평화는 망각일 뿐이다.


『파묘』는 나에게 영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진단서였다.


이 시대가 앓고 있는 병의 이름을 정확히 보여주는 문서였으며,


정확하고 차가우며, 피할 수 없는 윤리적 보고서였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내 안에 살아 있는 윤리의 눈을 다시 뜨게 되었다.


정의로운 인간으로 살아가려는 나의 여정,


그 고요하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 싸움을 다시 확인하였다.



이것이 『파묘』를 다시 본 나의 감상이다.


이름 없는 무덤 앞에서, 나는 오늘도 잊지 않겠다는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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