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쩌면 정말 지구에게 가장 유해한 종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지구에 등장한 이후, 수많은 생명체가 사라졌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1500년 이후 최소 870종 이상의 동식물이 멸종했으며, 그 대부분은 인간 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실제 피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은 현재의 멸종 속도가 자연적 배경 멸종률보다 수십 배에서 수천 배 빠르다고 보고 있으며, 많은 종은 기록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다.
유엔 산하 IPBES(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서비스 정부간 과학정책플랫폼)는
약 100만 종 이상의 생물이 향후 수십 년 내 멸종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흐름 때문에 과학자들은 현재를
자연 재해가 아닌 인간 활동에 의해 촉발된 ‘여섯 번째 대멸종’의 시작으로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파괴가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개발·소비·통제라는 이름으로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https://www.reuters.com/graphics/GLOBAL-ENVIRONMENT/EXTINCT/lbvgggdgevq/?utm_source=chatgpt.com 외
인간은 언제부터 지구의 구성원이 아니라
지구의 관리자라고 믿기 시작했을까.
자연은 관리 대상이 되었고,
생명은 자원이 되었고,
타인은 변수로 환원되었다.
이 과정은 폭발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다.
아주 효율적으로, 아주 합리적으로,
그리고 놀라울 만큼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우리는 더 많이 보게 되었고,
더 빠르게 계산하게 되었으며,
더 적게 책임지게 되었다.
감시는 안전을 이유로 정당화되었고,
검열은 질서를 이유로 합리화되었으며,
폭력은 필요악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인간성은
의도적으로 제거된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요소로 정리되었다.
공감은 느리고,
윤리는 복잡하며,
사유는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점점 주변으로 밀려났다.
그 결과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반응하는 존재가 되었다.
불편함에는 분노로 반응하고,
두려움에는 배제로 반응하며,
복잡한 질문에는 단순한 적을 만들어 반응한다.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언젠가 이런 주장도 등장할 것이다.
“인간은 더 이상 지구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극단적으로 들리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결론은 아니다.
지구를 파괴하는 주체,
다른 종을 대량으로 멸종시키는 존재,
자기 스스로를 감시하고 통제하지 못해
외부 시스템에 의존하는 종.
만약 이 모든 특성을
다른 생물에게서 발견했다면
우리는 이미 제거 대상을 논의했을지도 모른다.
이 사고가 위험한 이유는
그 잔혹함 때문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성립해 버린다는 점에 있다.
인간이 스스로를 부정하는 집단이 생겨난다면
그것은 광기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 대해 내린 최후의 평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힘을 가졌으면서도
그 힘을 다룰 윤리를 함께 진화시키지 못한 상태다.
인간은 너무 빠르게 커졌고,
너무 늦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술도,
더 강한 통제도,
더 정교한 감시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능력,
불편함을 견딜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우리는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를
다시 묻는 태도다.
지구에서 인간의 의미는
지배자가 되는 데 있지 않다.
그 의미는
멈출 수 있는 존재,
스스로를 제한할 수 있는 종,
자기 파괴의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만약 인간이 이 능력을 완전히 잃는다면,
그때 인간은 지구에 해악이 되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 한,
그 결론은 확정되지 않았다.
인간의 의미는
이미 증명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유예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