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사역

성소수자는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 되는가?

by 박온유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다양성과 인간의 존엄성을 신앙의 핵심 가치로 삼아 쓰여졌음을 먼저 밝힙니다.
이는 특정 집단을 설득하거나 논쟁을 촉발하기 위함이 아니라,
성경을 읽고 신앙을 고민하는 한 개인이 도달한 성찰의 기록에 가깝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는 언제나 배제보다 초대,
정죄보다 회복이라는 흐름이 존재해 왔습니다.
성소수자 역시 이 흐름에서 예외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시대적 유행이 아니라, 신앙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정직한 물음이라고 생각합니다.


1.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

성경은 구원이 특정한 조건이나 집단에 국한되지 않음을 반복해서 말합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에서 주목할 부분은 “세상”과 “믿는 자마다”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대상이 정해진 사랑이 아니라, 먼저 주어지고 열려 있는 사랑입니다.
누가 그 사랑의 자격을 판단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 앞에서
성경은 일관되게 믿음이라는 관계의 응답만을 말합니다.


2. 차별 없는 하나님의 사랑


갈라디아서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이 구절은 단순한 도덕적 선언이 아니라,
당시 사회 질서를 뒤흔드는 급진적인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정체성, 역할, 위계로 나뉘던 인간의 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구원의 기준이 되지 않음을 분명히 합니다.

이는 성별, 문화, 사회적 위치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만들어낸 다양한 정체성의 경계 또한
구원의 문턱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신앙적 통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3. 모든 이들을 향한 초대


이사야 56:3–7

"이방인들이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자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겠고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이라."


이 본문에서 하나님은 율법과 공동체 규범 안에서 배제되었던 이방인과 고자를
“내 집”, “기도하는 집”으로 초대하십니다.

중요한 점은 이 초대가 조건 없는 동정이 아니라, 언약과 관계 안으로의 적극적인 초대라는 것입니다.
배제되었던 이들이 더 이상 주변부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 한가운데로 불려 들어옵니다.

이 흐름은 오늘날 교회와 신앙 공동체가 성소수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여전히 문을 지키는 자리에 서 있는지, 아니면 문을 여는 쪽에 서 있는지 말입니다.


4.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


창세기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이 구절은 성별의 구분을 말하기 이전에,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동일한 근거 위에 서 있음을 선언합니다.
성소수자 역시 예외 없이 이 선언 안에 포함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기능이나 역할, 사회적 승인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존재 그 자체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엄은 교정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경계 밖에 있다고 여겨졌던 이들을
하나님의 이야기 안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방향으로 읽혀 왔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 성소수자를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에서 배제해야 할 명확하고 단일한 근거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이 글은 결론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신앙이 정말로 생명을 살리는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우리가 누구의 자리에 서서 성경을 읽고 있는지를
조용히 되묻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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