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언어

인간을 사냥하는 비겁한 사냥꾼의 조롱

by 박온유

도널드 트럼프의 언어를 바라보고 있으면 한 가지 감각이 반복해서 떠오른다.

그는 대화하지 않는다. 그는 싸우지도 않는다. 그는 사냥한다.

상대를 논리로 설득하거나 정책으로 반박하지 않고, 인간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노려

조롱이라는 무기를 던진다.

이 언어는 우발적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기술이며,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 전략이다.

그리고 그 전략은 지금 이 시대의 정신을 오염시키고 있다.


1. 국가를 대표하는 ‘땀’을 조롱하는 자의 빈곤함

스키 선수 헌터 헤스가 토로한 고뇌는 패배자의 변명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를 대표한다는 무게, 성과로만 환산되지 않는 인간의 존엄, 경쟁의 끝에서 마주한 자기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끝까지 버틴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윤리적 자각이다.

이는 약함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양심의 발현이다.


트럼프는 그 고백을 듣지 않았다. 아니, 들을 수 없는 위치에 서 있다.

그는 곧바로 “패배자”라는 단어를 던졌다. 이 한 단어는 그의 세계관을 정확히 드러낸다.

노력의 과정은 삭제되고, 결과만 남는다. 질문은 사라지고, 승패만 존재한다.

이 조롱은 상대를 향한 공격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 고백에 가깝다.


트럼프는 정직한 노력의 세계를 살아본 적이 없다.

실패를 감내하며 축적되는 시간, 성과 이전의 고독, 땀과 좌절의 무게를 통과해 본 경험이 없다.

그렇기에 그는 그런 세계를 혐오한다. 동시에 질투한다.

싸우는 사람을 조롱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결코 가져보지 못한 삶의 윤리를 부정하려 한다.

이 조롱은 강자의 언어가 아니라, 결핍된 자의 방어기제다.


2. 합성된 이미지 뒤에 숨은 추악한 인종주의

오바마 부부를 유인원으로 합성한 영상은 실수가 아니다.

우발적 사고도 아니며, 직원의 장난이라는 해명으로 덮을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그것은 명백한 인종주의적 폭력이다.

인간의 얼굴을 동물로 치환하는 이 방식은, 인류가 수백 년 동안 투쟁해 온 인권의 역사를 단 몇 초 만에 되돌리는 가장 원시적인 공격이다.


인종주의는 언제나 농담의 얼굴을 쓰고 나타난다. “그냥 웃자고 한 것”이라는 말 뒤에 숨어

인간의 존엄을 훼손한다.

트럼프는 이 오래된 수법을 능숙하게 활용한다.

직접 말하지 않아도 지지자들이 알아서 해석하도록 만들고, 문제가 되면 한 발 물러서서 책임을 회피한다.

이는 교활함이 아니라 비겁함이다.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의 말이 낳을 결과를 알면서도 그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할 때,

그 사회는 이미 위험 구간에 진입한다.

트럼프의 “직원 실수”라는 변명은 악의의 부정이 아니라, 책임 회피의 선언이다.

그는 자신의 언어조차 감당하지 못한다.


3. 트럼프라는 시대의 오염

트럼프의 언어는 소통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이해도, 설득도 필요 없다. 그의 언어는 적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누군가를 ‘패배자’로 규정하는 순간, 지지층은 안도한다.

“적어도 우리는 아니다”라는 감각이 생기기 때문이다. 혐오는 이렇게 공동체의 접착제가 된다.


이 방식은 정치적으로 효율적이다.

분열은 결속을 낳고, 증오는 충성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인간 정신의 영역에서는 명백한 파산이다.

언어가 의미를 전달하지 않고 상처만 남길 때, 사회는 서서히 붕괴한다.


문제는 이 오염이 전염된다는 점이다.

트럼프를 비판하는 이들조차 어느 순간 그의 언어를 닮아간다.

조롱으로 맞서고, 상대를 단순화하며, 인간을 기호처럼 취급한다.

그 순간 비판은 저항이 아니라 모방이 된다.

우리는 그가 만든 언어의 늪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4. 나의 선언

나는 트럼프의 오염된 언어에 오염되기를 거부한다.

그는 타인을 ‘패배자’라 부르고, 유인원으로 비하하며, 인간의 존엄을 훼손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 한다.

그러나 진정한 패배자는 타인의 존엄을 짓밟지 않고는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는 자다.


나는 그의 언어를 흉내 내지 않는다.

나는 조롱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나는 기록한다.


이 시대에 어떤 언어가 인간을 사냥했는지를, 누가 그 언어를 사용했는지를,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거부했는지를 문장으로 남긴다.

이것이 인간의 최소한의 윤리다.


언어는 무기일 수도 있고, 책임일 수도 있다.

트럼프는 언어를 살상의 도구로 사용했다.

우리는 언어를 기록의 도구로 사용한다.

이 차이가 인간과 비겁한 사냥꾼을 가른다.



고마해라 마이 무따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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