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을 만든 자의 소외

13년의 전문성이 약탈당한 나의 마지막 선택

by 박온유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자주 오해받는다.

손에 잡히는 물건이 없다는 이유로 그 시간은 노동이 아닌 ‘정지 상태’처럼 취급된다.

그러나 내가 지난 13년 동안 수행해 온 일은 정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데이터 마이닝, 분석, 코딩, 그리고 사무 자동화.

보이지 않는 구조를 설계하고 반복되는 비효율을 제거하며,

조직이 스스로 굴러가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그 일은 단순한 기술의 축적이 아니었다.

문제를 정의하고 흐름을 해체하고 다시 연결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변수와 예외를 견디며 시스템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 조직은

더 적은 시간과 비용으로 더 많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 성과는 이해되지 않았다.

육체적 노동만을 노동으로 간주하는 시선 앞에서

모니터 앞의 시간은 ‘편한 일’ 혹은 ‘유희’로 오독됐다.


효율의 대가는 휴식이 아니었다.

자동화로 확보한 시간은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타 부서의 업무와 경영진의 잡무가 흘러들어왔다.

본업은 점점 흐려졌고 부차적인 일들이 중심을 잠식했다.

13년 동안 반복된 이 구조는 하나의 메시지를 남긴다.

이 조직에는 전문성을 존중하는 기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이 왜곡은 잠시 깨졌다.

단 3~4일의 부재만으로도 업무는 멈췄고 시스템은 균열을 드러냈다.

그 순간마다 명확해졌다.

내가 수행해 온 일은 대체 가능한 업무가 아니라 조직을 지탱하는 구조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조직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건강 문제로 인한 업무 능력 저하’라는 프레임을 덧씌웠다.

필수성을 결함으로 바꾸는 방식이었다.


이후 벌어진 일은 더 노골적이었다. 감봉이었다.
첫 번째 감봉은 어떤 징계 절차도, 공식 문서도 없이 단 한 마디로 시작됐다.

내가 갑작스러운 공황으로 회사에서 약을 복용했고 이후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퇴근을 했고 이후 기억에 없지만 나는 추돌 사고가 났다.

물론 약을 제때 복욕하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 병원의 진단서 감정서와 함께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변호를 했다.

그럼에도 돌아온 건 “인정할 수 없다. 네가 지금 약을 복용하는 것 자체가 이미 리스크다.

따라서 너는 감봉이다.”


그 말로 급여는 340만 원에서 240만 원으로 떨어졌고,

그 상태는 처음에는 3개월 그러다 6개월, 1년 마지막은 무기한이었다.

그렇게 나의 감봉은 1년 6개월 동안 유지됐다.

그 과정에서 나는 회사에 어떠한 불이익도 초래하지 않았다.

징계 사유는 존재하지 않았고, 기록도 남지 않았다.

그저 말로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두 번째 감봉 역시 다르지 않았다.

‘연대책임’이라는 명목이 붙었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징계도 없었고, 문서도 없었다.

설명 없이 시작된 감봉은 지난해 10월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같은 방식, 같은 구조였다

책임은 구체적으로 규정되지 않았고 감봉만 결과로 남았다.

그것도 이번에는 최저임금. 세후 180만 원.


이 반복은 우연이 아니다.

절차를 생략하고, 기록을 남기지 않으며, 개인에게만 결과를 떠넘기는 방식.

그 구조 속에서 감봉은 징계가 아니라 통제 수단으로 사용됐다.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그보다 더 크게 훼손된 것은 기준이었다.

무엇이 평가의 근거인지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태.


그리고 지금, 또 다른 선택이 제시됐다.

캐드를 배워서 전혀 다른 부서로 이동하든지, 아니면 떠나든지.

이것 역시 공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말로 전달된 조건이었다.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방향만을 가리키는 압박이다.


나는 그 제안을 거부했다.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구조 자체가 부당하기 때문이다.

불법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선택지에 응답하는 순간 그 구조를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선을 그었다. 여기까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움직인다.

이번에는 이 조직을 벗어나기 위해서다.
내일 면접을 본다.

이 선택은 밀려난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반복된 왜곡 속에서 도달한 하나의 결론이다.

남아 있는 것은 버티는 일이 아니라 소모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코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시스템은 내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는지를 그대로 증명한다.

왜곡은 언제나 사람의 언어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나는 떠나기 위해 준비한다.


리스크가 아닌 능력으로 평가받는 자리, 결과가 왜곡되지 않는 자리,

노동이 노동으로 인정되는 자리로 이동하기 위해.


13년 동안 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제는 그 시스템 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설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