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의 시간을 접으며 운다
나는 오늘, 한 문장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만두겠습니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14년이 접혀 있었다.
오랫동안 매일같이 오가던 길, 익숙한 건물의 냄새,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수많은 시간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내가 쌓아 올렸던 것들까지.
이상하게도 말을 꺼내는 순간보다
그 이후가 더 무거웠다.
돌아서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이 붙잡히는 느낌이었다.
특히 사람들.
내가 아끼던 아이들.
그 아이들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나는 그들을 남겨두고 나왔다.
그건 단순히 회사를 떠나는 일이 아니라
어떤 관계에서 물러나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많이 울었다.
참으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됐다.
눈물이 터지는 건 어떤 선택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오래 버텨왔던 시간이
이제야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방식 같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이곳에서
멈춰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겉으로는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었지만,
그 안에서는 계속해서 흐름을 쪼개고,
문제를 정의하고,
다시 연결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건
그 ‘움직임’이었다.
손에 잡히는 게 없다는 이유로
그 시간은 종종 ‘편한 일’로 취급됐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처럼 오해됐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건 정지가 아니라
계속해서 구조를 바꾸는 일이었다는 걸.
효율을 만들면,
그 효율은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비어버린 시간 위로
다른 일들이 쌓였고,
본업은 점점 희미해졌다.
나는 점점
내가 잘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비어 있는 자리를 채우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 과정에서
이 조직이 무엇을 기준으로 움직이는지
점점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전문성은 기준이 아니었다.
기록도 아니었고,
절차도 아니었다.
그저 말 한마디.
그 말은 때로 사람의 시간을 깎아냈고,
때로는 이유 없이 숫자를 줄였고,
결국에는 한 사람의 방향까지 바꾸려 했다.
나는 그 말들 속에서
점점 작아지는 대신
오히려 더 분명해졌다.
이건 견디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
이건 버틴다고 해결되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오늘,
나는 선을 그었다.
여기까지라고.
솔직히 말하면,
두렵다.
익숙했던 길을 떠난다는 건
항상 위험처럼 느껴진다.
내일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고,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어질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래도 이상하게
이 선택이 틀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이 선택으로 이어졌다는 느낌이 더 가깝다.
나는 밀려난 게 아니다.
나는 빠져나온 것이다.
그 차이는 아주 작아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내가 만든 코드들은 남아 있다.
그 안에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봤는지,
어떻게 해결해왔는지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건 누구의 말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안다.
내가 쌓아온 건
사라진 게 아니라
단지 장소를 옮길 준비를 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나는 이제
다른 곳으로 간다.
리스크가 아니라
능력으로 평가받는 자리로.
말이 아니라
기록과 결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로.
노동이
제대로 노동으로 인정되는 자리로.
14년 동안
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시스템을 만든다.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고,
왜곡되지 않으며,
필요할 때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구조.
오늘의 선택은
끝이 아니라
설계의 시작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두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