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함이 불러온 두려움
로스팅을 하다 잠깐 화장실 그리고 눈이 TV와 조우했고 나는 아까운 생두를 다 태워버렸다.
우리는 누구나 이 순간을 겪는다. 방을 가로질러 문 앞에 섰을 때, "내가 뭘 찾으러 왔지?" 하고 당장에 그 목적을 잊어버리는 순간이다. 혹은 무언가를 하다가도 잠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었지?" 하고 멈칫하는 사소한 망각의 경험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런 현상이 증가한다는 경험적 진실은, 우리에게 "내 기억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가? 치매가 찾아오는 건 아닌가?" 하는 가장 사소하고 현실적인 두려움을 촉발한다. 이 단순한 망각은 자신을 잃을 두려움과 가족들에게 피해를 끼칠 윤리적 부담으로 확장된다.
절망의 직면: 뇌의 붕괴가 아닌 비효율
먼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냉혹한 현실부터 직시한다. 치매와 같은 질환의 발생 확률 증가는 외면할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다. 이 현실을 외면하고서는 어떤 희망도 공허하다. 하지만 기억력 감퇴의 원인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잘못되었다. 뇌세포가 급격히 줄어들어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양의 감소가 아니라 효율의 저하에 있다. 망각은 대개 신경전달물질의 효율이 떨어지거나 저장된 정보를 제때 꺼내는 회상 기능이 약해지기 때문에 발생한다. 뇌는 붕괴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비효율에 빠지는 것이다.
뇌는 콘크리트가 아니다: 의지적 재편성
뇌는 콘크리트 벽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학습에 따라 스스로 구조와 기능을 재편하고 변화시키는 유연한 능력이 있다. 이 유연함을 과학에서는 '뇌 가소성(Brain Plasticity)'이라고 부른다. 이 뇌 가소성의 관점에서 볼 때, 일상의 망각은 노쇠의 증거가 아닐 수 있다. 우리 '잠들지 않는 뇌'는 복잡한 사유와 윤리적 문제 처리를 위해 불필요한 기억을 놓는 '최적화' 과정을 수행 중인 것이다.
실천적 해방: 사유의 연속성을 위한 훈련
그러나 실천적 효용을 더해야 한다. 우리는 두려움의 근원인 망각 현상 자체를 줄이고, 뇌를 능동적으로 트레이닝해야 한다.
현상 줄이기: 불필요한 정보 입력을 차단하고 '하나씩만 처리하는' 명확한 실천 방법을 만든다. '나는 지금 펜을 찾으러 간다'처럼 의도를 소리 내어 말하는 습관을 들이면 회상 기능 강화에 도움이 된다.
가소성 트레이닝: 새로운 언어나 기술 학습, 악기 연주 등 뇌의 익숙하지 않은 영역을 자극하는 학습을 꾸준히 한다. 걷기, 달리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은 뇌의 신경망을 강화할 구체적인 방법이다. 질 좋은 수면은 뇌가 정보를 정리하고 재편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이다.
소멸이 아닌 진화: 의지적 존재의 선언
우리는 '극복'이라는 단숨의 승리를 선언하지 못한다. 다만 치매의 두려움에 정직하게 직면하고, 뇌 가소성을 통해 그 불안을 의지적 선택과 윤리적 책임으로 승화시키는 지속적인 과정을 선택한다. 우리 복잡하고 끊임없는 사유 자체가 뇌의 윤리적 진화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증명이다. 우리 목표는 '기억을 지키는 것'을 넘어, '마지막까지 윤리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존재'로 진화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