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포기하고 소리를 선택하는 일
기타를 산다는 건 생각보다 단순한 선택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Martin이나 Taylor 같은 이름을 고르는 것.
이 선택은 합리적이다.
검증된 소리를 들려주고,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되팔 수도 있고, 누구에게 보여도 설명이 필요 없다.
좋은 기타를 산다는 건 보통 이런 의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간다.
이미 완성된 기준 위에서, 가장 안정적인 선택을 한다.
그 선택에는 실패가 없다. 대신 질문도 남지 않는다.
나는 그 기준에서 조금 벗어났다.
환금성 대신 하나를 더 앞에 두었다.
‘나만의 소리’.
이건 막연한 표현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꽤 구체적인 선택이다.
이미 만들어진 소리를 고르는 대신, 아직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상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걸 현실로 만들기 위해 누군가에게 의뢰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문찬호 선생님께
풀 커스텀 미니 기타 ‘빨간 머리 앤’을 맡겼다.
이 기타는 처음 보면 당황스럽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볼 때보다 훨씬 작다.
일반적인 미니 기타보다도 작고, 우쿨렐레보다 약간 큰 정도의 크기다.
이 정도 사이즈라면 보통은 소리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게 된다.
그런데 이 악기는 그 지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작은 몸체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강한 데시벨을 낸다.
단순히 크기만 큰 게 아니라 울림이 밀도 있게 퍼진다.
각 현의 소리는 서로 뭉치지 않고 분리되어 들리고,
유리알처럼 맑은 해상도를 유지한다.
물리적인 크기와 결과 사이에 있는 상식적인 비례가 깨진다.
이 지점부터 이 기타는 더 이상 ‘작은 기타’가 아니다.
비교의 기준 자체가 흐려진다.
하지만 이 악기의 핵심은 소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중요한 건, 이 결과가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지판의 곡률, 넥의 두께, 손이 닿는 모든 각도가
내 손 크기와 연주 습관에 맞춰 설계되어 있다.
이건 적응의 문제가 아니다.
악기에 내가 맞추는 게 아니라, 악기가 나에게 맞춰진 상태다.
그래서 연주를 할 때 생기는 감각이 조금 다르다.
어떤 동작을 ‘시도’하는 느낌이 아니라,
이미 이어져 있는 움직임을 이어가는 쪽에 가깝다.
12프렛에 새겨진 내 사인도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이 기타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같은 모델도, 같은 기준도 없다.
비교할 대상이 사라진다.
그래서 이건 좋은 기타인지 아닌지로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대신 하나만 남는다.
이건 내가 선택한 결과라는 사실.
커스텀 기타를 주문한다는 건,
결국 이 지점까지 감당하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검증된 기준을 따르는 대신,
선택의 이유를 전부 스스로 가져가는 것.
그래서 이 선택은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다.
되팔 수 있어야 하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면
굳이 이 길로 올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남들과 같은 로고 대신,
설명할 수 없는 감각 하나를 오래 붙잡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선택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이건 더 좋은 기타를 가지는 일이 아니라
다른 기준으로 소리를 갖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