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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n 17. 2024

애써서 내 몸을 돌보는 일

편지할게요!

To. 대구.


작가님의 걷기 예찬을 읽으며 제 남편을 떠올렸습니다. 그도 걷기 예찬론자 거든요.


몇 년 전, 뉴델리에 살 때 남편의 공황장애로 꽤 힘든 날을 보냈습니다. 그때 남편은 집에 붙어있질 못했습니다. 매일 밖으로 나가 걸어 다녔어요. 2시간은 기본이었지요. 밥도 먹지 못한 채 그 무더운 뉴델리의 여름  속을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 다녔으니, 몸은 새카맣게 그을리고 뼈만 앙상하게 남았답니다.

그런 남편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 또한 쉽지 않았어요. 도대체 왜 저러나....  뭐가 문제 일까.... 저는 매일 이 생각을 했어요. 그가 걷는 동안 전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야 했고, 집안일을 해야 했고, 막 시작한 책 쓰기 코칭 온라인 강의를 해야 했거든요. 자신의 마음조차 다스리지 못하고 밖으로 배회하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를 이해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었지만, 지금은 있는 모습 그대로의 그 사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함께 걷는 일이 많아졌어요.

처음에는 걷는 것보다 뛰는 게 좋아서 남편을 뒤에 남겨두고 쌩~ 하니 달려가버렸습니다. 뒤에 남겨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든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았어요. 내 몸과 마음이 더 중요했거든요.


지금은 서로의 속도를 맞추며 걷고 있습니다. 그 걷는 속도뿐만 아니라 일생 생활에서도 서로의 속도와 방향을 맞추려 노력하며 지내고 있어요. 미우나 고우나 부부니까요. 이런 게 부부인가.... 싶습니다.


작가님의 우울과 삶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는 지금 그 시간은 어떤 속도로 지나가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요즘 제 삶의 호흡이 무엇인지 물으셨지요?

글쎄요.... 그게 뭘까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게 뭔지 떠오르지 않네요. 요즘의 저는 애써서 하는 일이 별로 없어요. 애써서 글을 쓰지도 않아요.

한 가지 있다면, 제 몸을 애써서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님께서 요즘 집밥을 하기 시작했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해외에서 사는 내내 집밥을 하고 있어요.

밀라노는 외식비용이 꽤 비쌉니다. 4인 가족이 괜찮은 레스토랑에 가서 한 끼 식사를 하면 100유로가 훌쩍 넘어가요. 배달 음식을 시키더라도 50유로가 나오니, 함부로 시킬 수가 없어요.

(한국도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하던데 어떤가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집에서 밥을 해결합니다. 정 먹을 게 없으면 계란 프라이에 간장이라도 비벼서 집에서 먹어요. 하지만 되도록 저녁밥은 가족들이 먹을만한 요리를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다들 회사와 학교에서 점심을 부실하게 먹으니까요.


얼마 전에는 돼지갈비를 사다가 폭립을 만들었어요. 애슐리 뷔페에 나오는 그 폭립, 맞아요. 소스도 제가 직접 만들어서 오븐에 넣고 구웠는데요, 꽤 먹을만하더라고요.

며칠 전에는 남편의 고향 음식인 충무김밥을 만들었습니다. 마침 냉장고에 오징어와 어묵이 있어서 후딱 오징어무침을 만들었지요. 그런데 세상에나.... 쌀이 똑 떨어졌지 뭐예요? 그래서 밥은 아주 조금, 오징어무침은 많이 만들 수밖에 없었어요. 쌀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이렇게 대충대충 사는 주부라니.... 말 다했죠?


밀라노에 살면서 피자나 파스타는 왜 먹지 않는지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마트에 가면 파스타 면이 정말 많아요. 색깔도 다양하고, 종류도 다양합니다. 스파게티 면의 두께도 제각각이지요. 어떤 파스타인지에 따라서 파스타 면과 모양을 고른다고 해요.

그런데 제 아이들은 학교에서 매일 파스타를 먹어요. 가끔은 아무런 양념도 들어가지 않은, 면만 삶은 파스타가 나오기도 해요. 맵고 짠 자극적인 한국 양념에 익숙한 저희 아이들은 이렇게 아무런 맛이 나지 않는, 아니 밀가루 맛만 나는 파스타를 보면,

"아무 요리도 되어있지 않은 파스타"라고 말해요. 하지만 엄연히 이탈리안 레스토랑 메뉴에 존재하는 "pasta in bianco"랍니다.


결론적으로 저희 가족은 이탈리안 파스타를 좋아하지 않아요. 오히려 제가 집에서 직접 만든 파스타를 좋아하지요. 일반 토마토소스에 고춧가루를 곁들여 매콤하게 먹는, 일명 고춧가루 토마토소스 파스타랍니다.

제가 너무 아이들 입맛을 자극적으로 길들인 것은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해요.



가족들에겐 이렇게 잘 해먹이면서도 정작 나는 대충 때우기 일쑤였어요.

혼자 집에서 먹는 점심은 라면으로 때우던지, 인스턴트 음식을 사다 데워 먹기 일쑤였지요.

그런데 조금씩 몸이 나빠진다는 걸 느꼈어요. 몸에 독소가 쌓이는지 여기저기 가렵기도 했고요, 아무리 운동을 하고 저녁을 굶어도 살이 빠지지 않았지요. 뱃살은 말해 뭐해요.....

이데로는 정말 안 되겠다 싶어서 식이조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탄수화물과 설탕을 줄이고, 단백질과 야채를 많이 먹기로 결심했어요. 요즘은 야채 듬뿍 넣고, 토마토와 올리브오일에 구운 야채, 삶은 달걀, 닭가슴살을 하루에 두 끼씩 먹고 있어요.


몸의 독소를 빼주고 야채를 많이 섭취할 요량으로 양배추, 당근, 브로콜리, 토마토를 삶고 갈아서 만든 "해독주스"를 3주 정도 마셨는데요, 어느 날 큰 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엄마, 그거 약간.... 토하고 남은 찌꺼기 같아....."

그 말에 한번 충격을 받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아니야, 약간.... 설사 똥 같아...."


그 말을 들으니 해독주스 먹기가 싫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애사비라고 하는 애플사이다비니거를 물에 타서 홀짝홀짝 마시고 있어요.


제가 밀라노에 살면서 와인에 맛을 알아버렸답니다. 방글라데시, 인도에 살 때는 술을 구하기가 힘들었어요. 와인은 더더욱 구하기 힘들었지요. 듀티페이샵에 가야 살 수 있었는데 와인이나 맥주를 사겠다고 거기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온 세상이 술 천지예요.

마트 한쪽에 와인과 맥주가 종류별로 쫘~~ 악 늘어서 있고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술이 가득가득 있어요.

하나씩 사놓고 집에서 홀짝홀짝 마시던 제가 최근에 술을 끊었습니다. 대신 식초를 마시고 있죠 ㅎㅎㅎ

이 또한 아이들이 식초 냄새난다고 코를 막지만, 뭐 토사물이나 똥보다는 나으니까요.



이렇게 나쁜 음식을 멀리하고, 좋은 걸 가까이하면서 제 몸을 돌보고 있습니다.

이게 요즘 제 호흡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 또 한 가지. 3개월째 하고 있는 골발교정스트레칭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고 있어요. 허리과 골반이 너무 아파서 시작한 수업인데요, 꾸준히 따라 했더니 허리와 골반 통증이 사라졌어요. 덤으로 얻은 것은  앞으로 숙여지지도 않던 허리가 숙여지고, 앞으로 숙이면 손이 땅에 닿는다는 사실입니다. 유언성이 전혀 없는 줄 알았는데, 이런 운동을 오랫동안 하지 않아서 못한 거였나 봐요.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면 이상하게도 자신 보다 가족들을 더 돌보게 되지요. 우리의 엄마들도 그러하셨고, 우리도 그러고 있고요. 작가님께서 보내주신 책의 글귀, "너 스스로를 잘 돌봐야 한다."는 문장을 마음에 담아봅니다.  그리고 내 딸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습니다. 가족도 중요하지만 내 몸과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걸 우리의 딸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엄마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가정이 원활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매일매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것 같아요. 집안일을 함께 해주는 일이 그중에 가장 큰 도움이 되지요.

제 아이들은 이제 둘 다 10대라서 돌아가며 설거지를 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일주일에 2번은 남편이 하기로 했는데 회사일이 힘들다는 핑계로 자꾸 빼먹더군요. 결국 큰아이가 아빠 대신 설거지를 해주고, 아빠로부터 자전거를 받았답니다.



어렸을 적에 겁이 너무 많아서 자전거를 배우지 못했던 아이는 한 달 전에야 겨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어요. 아이가 지금 중1이니까 다른 아이들에 비해 꽤 늦은 편이지요.

근데 아이가 자전거를 너무 좋아해요. 저녁마다 자전거를 타러 나가자고 보챕니다. 혼자 나가서 탈 수도 있을 텐데 여전히 엄마랑 함께 자전거 타는 게 좋다고 해요.

둘째는 아직도 자전거를 못 탑니다. 자꾸 넘어져서 겁이 나나 봐요. 대신 제가 운전하는 자전거 뒤에 앉아서 아주 편안하게 자전거를 즐기고 있지요.



어제는 아이들과 자전거로 공원을 2바퀴나 돌았어요. 너무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행복이 별 건가 싶었습니다.

뒤에 앉아서 투바투 노래를 부르던 딸아이가 제게 말했어요.

"엄마, 난 우리 가족이 참 좋아."

"왜?"

"우리는 뭐든 함께 하잖아. 가족적이야."


그게 엄마로서 얼마나 애를 쓰며 하는 일인지 아이는 알까요? 그래도 아이가 가족이  좋다고 하니 안심했습니다.



작가님의 아이들도 분명 이런 고백을 하게 될 거예요.

학교 끝나고 학원이 아닌 공원으로 함께 달려가는 엄마니까요.  



작가님, 잘 흘러가고 계십니까?

흘러가는 데로 몸을 맡기고 천천히 부유하다 보면, 언젠간 땅에 닿을 겁니다.

그곳이 반짝이는 모래가 가득한 해변가일지, 뻘이 가득한 바닷가일지, 그것도 아니면 작은 외딴섬일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그곳이 어디든 잘 흘러가길 바랄게요.


from.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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