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탈리아어 레벨 테스트

by 선량


몇 달 전, 평소에 인사만 하던 옆집 아줌마를 버스정류장에서 만났다. 그동안 공부했던 말을 사용해보고 싶은 마음에 용기 내어 그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아들이 몇 살이야?”

“우리 아들은 5살이야.”

“딸은 엄청 크던데?”

“맞아. 딸은 내 딸이고 아들은 지금 남편과 낳은 아이야. 난 페루에서 왔는데~~~”

나는 그저 아들과 딸에 대해 질문했는데 그녀는 묻지도 않은 집안사정을 구구절절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중 절반은 알아듣지 못했고 어림짐작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던진 한 마디.

“세이 조바네”

나는 순간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나보고 조바네냐고 묻는 말이었다.

‘나는 조바네가 아닌데…. 조바네가 뭐지…. 뭐지???”

나는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미안해, 이탈리아 말을 잘 못해. 이해를 못 했어.”라고 답했다. 그녀는 껄껄 웃으며 괜찮다고, 천천히 하면 된다고 답했다. 곧 도착한 버스가 구원자 같았다.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얼른 버스를 탔다.



언어를 배우는 이유는 소통을 하기 위함인데, 부족한 내 어휘력 때문에 자꾸 소통이 끊긴다. 고민 끝에 집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꼬무네(Comune)는 이탈리아 행정체계의 가장 기본단위로 우리나라의 구청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다. 이 꼬무네에서 문화센터처럼 몇 가지 코스를 진행하는데 그중 하나가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어 수업이다. 꼬무네 어학원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먼저 레벨테스트를 치러야 한다. 레벨테스트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기한에 직접 방문해서 예약을 하거나 온라인으로 장소와 시간을 예약해야 한다. 다행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센터가 있었다.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려는데 출신국가에 대한민국이 보이지 않았다. 내 눈이 잘못되었나? 내 노트북이 이상한가? 여러 번 시도해 봐도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았다. 국가 때문에 이번 기회를 날릴 수는 없다는 생각에 고민하다 “Corea del nord(북한)를 클릭했다. 예약을 마치고 나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겨우 레벨 테스트이지만, 혼자서 공부한 이탈리아어를 검증받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약 날, 센터에 가니 이미 여러 사람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시험을 봐야 한다는 긴장보다는 날 북한사람으로 오해할까 봐 걱정되는 마음이 더 컸다. 접수실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했으나, 그저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 말만 되풀이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교실로 향했다. 교실엔 이미 두 사람이 앉아 시험지를 풀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머리가 하얀 여자 선생님이 시험지를 건네주었다. 빼곡히 적힌 시험지는 총 2장이었다.

그동안 온라인으로 공부했던 것, 듀오링고로 공부했던 것, 혼자 공부했던 모든 어휘와 문법들이 실타래처럼 얽혀버렸다. 한번 얽힌 언어의 실타래는 풀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마주한 시험지 앞에서 나는 얼음이 되었다. 내가 정답이라고 확신한 문제는 몇 개 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직감에 의지해 찍기를 했다. 문제를 다 풀고 앞에 앉아있던 선생님에게 제출하니, 바로 채점을 했다.

현재형 문제에서는 그나마 몇 개 맞은 것 같았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비가 내렸다. 배시시 웃음이 났다. 내 이탈리아어 레벨을 눈으로 정확하게 확인하니,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나는 A2 레벨을 받았다. 더 낮은 레벨일 거라 짐작했는데, 현재형을 알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레벨이 한 단계 올라간 모양이다. 선생님이 작은 종이에 써준 레벨 결과를 1층 사무실에 제출했다. 2시간씩 일주일에 두 번, 4개월 동안 진행되는 이탈리아어 수업에 드디어 등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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