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글을 잘 쓰고 싶어 글쓰기 책을 열심히 읽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유시민/생각의 길), 강원국의 글쓰기(강원국/메디치미디어), 글쓰기의 최전선(은유/메멘토), 쓰기의 말들(은유/유유), 어쩌면 잘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이윤영/위너북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이다혜/위즈덤하우스), 유혹하는 글쓰기(스티븐 킹/김영사) 등등.
글쓰기 책을 읽다 글쓰기에 관한 글을 써보자 생각했다. 지식과 경험을 두루 갖춘 작가 이야기 대신, 지식과 경험은 부족해도 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의 솔직한 “쓰기”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다. 잘 쓰기 위한 방법이 수록된 책은 많이 있으니 글을 잘 못 쓰는 사람의 쓰기에 대해, 글 쓰며 실수했던 일들에 대해, 쓰지 않던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해 고백하고 싶었다.
SNS에는 글 쓰는 사람들도 많고 작가로 데뷔한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내 주위엔 글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20년 넘게 해외 생활을 하는 사람도,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한 사람도, 아이들을 치열하게 키워 낸 사람도 글을 쓰지 않았다.
20년 동안 워킹 맘으로 일하며 직장에서 인정받고, 두 아이도 잘 키우는 언니에게 글을 좀 써보라고 말했지만,
“글은 아무나 쓰니? 그것도 쓰는 실력이 있어야 쓰지.”
라고 말했다. 그것이 조금 안타까웠다. 풍부한 경험이 있어도 글을 쓰지 않는 이유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고 곁에서 함께 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어떻게 책을 쓸 생각을 했어? 정말 대단하다.”
첫 책 출간 후 여러 사람으로부터 이 말을 들었다. 한국이 아닌 곳에 살면 이런 일은 할 수 없는 일로 치부된다.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한국과 3시간 30분의 시차가 있기 때문이고 살아가는 공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간절한 마음 앞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나 역시 과거의 상처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았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에도 정체성을 찾지 못해 방황했다. 집에서 노는 한가한 엄마라는 시선이 참기 힘들었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낮은 자존감을 회복시키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마음이 땅으로 가라앉아 썩어버릴 것 같았다. 그때 운명처럼 쓰기를 만났다. 글이 먼저 나에게 다가오진 않았다.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했다. 그제야 글이 내 삶 속으로 들어와 비로소 쓸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읽어 지식은 쌓여갔지만, 생각을 글로 옮기는 일은 힘들기만 했다. 아무리 좋은 문장을 품고 있더라도 쓰지 않는다면 글이 될 수 없었다. 평범한 사람이 가수가 되기 위해 피, 땀, 눈물이 필요하듯, 내가 품고 있는 이야기가 글이 되기 위해서 읽고, 생각하고, 쓰는 성실한 노력이 필요했다.
여러 글쓰기 책에서 알려준 대로, 일단 많이 써보는 방법을 선택했다. 재능이 노력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믿고 싶었다. 날마다 한편 이상의 글을 쓰며 머릿속에 들어있던 모든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것도 쓰지 않던 사람이 골방에서 혼자 쓰다가 조금씩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작가님은 정말 성실하네요.”
첫 번째 책의 원고를 쓸 때, 편집자는 이렇게 말했다. 출간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던 사람이 책을 쓰면서 머리를 쥐어짜는 고통의 시간을 겪었지만, 엄마라는 타이틀만 갖고 살던 내가 그 외의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매우 기뻤다.
마감 기한 이틀 전에 원고를 써서 보냈고, 내용을 추가해 달라는 요청엔 또다시 머리를 쥐어짜며 글을 썼다. 탈고할 때까지 매번 마감 전에 원고를 보냈다. 내 원고를 보고 선택해준 출판사가 너무나 고마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게 초보 작가의 절실한 마음이었고, 성실한 태도로 나타났다. 내가 지금 내세울 수 있는 새로운 타이틀은 ‘성실하게 쓰는 작가’이다.
며칠 전, 내가 쓴 브런치 글이 365개인 것을 알게 되었다. 삭제한 글도 여러 개 있으니, 그 동안 참 많이도 썼다. 브런치에 처음 올린 글을 읽어 보면 많이 부끄럽다. 맞춤법도 모르던 사람, 한 꼭지가 뭔지도 모르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요즘 자기가 쓰는 글은 예전하고 좀 다른 것 같아.”
“어떤 게 달라진 것 같은데?”
“뭐랄까……. 예전에는 생각도 논리도 없이 그냥 막 쓰는 것 같았거든. 그냥 일기 같았지. 그런데 요즘 쓰는 글은 생각을 많이 하고 쓴 티가 나. 뭘 좀 알고 쓰는 것 같달까?”
홍 군의 말에 내 자존감이 한 계단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혼자 공부하여 글을 썼지만,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차곡차곡 쌓이고 쌓여 나만의 글쓰기 언덕을 만들었다.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을 때, 한 작가님이 다가와 내 손을 잡아 주었다. 글쓰기 책을 보내주고, 함께 글을 쓰자며 토닥여 주었다. 그분이 내 손을 잡아주었기에 글을 쓸 수 있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외로운 당신의 손을 잡아주고, 지친 당신의 어깨를 토닥이며 함께 쓰는 삶을 살자고 말하고 싶다.
당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당신의 손으로, 당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 골방에 있는 당신이 세상으로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