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을 써야 할까?

5장. 평범한 일상도 특별해 지는 쓰기의 날들

by 선량

얼마 전 내 브런치 글에 이런 댓글이 하나 달렸다

.

“여자들은 가족 얘기 아니면 쓸 게 없나 봐요. 지겹고 식상한 가족 이야기”

그 글은 지난 구정 설 때 쓴 글이었는데 홀로 설을 보내고 계실 어머님과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나서 쓴 글이었다. 당연히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이 많이 들어간 글이 되었다. 그 댓글을 읽고 약간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쓴 다른 글들은 읽어보지도 않은 것 같았고, 글 하나로 모든 여자들이 그런다며 일반화해버리는 오류의 댓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못했다. 내가 가족 이야기를 자주 쓰는 건 사실이니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긴 글을 쓰기란 쉽지 않다. 넓은 배경지식과 인문학적 소양, 다양한 경험이 있어야 풍성한 글을 쓸 수 있다. 그렇지만 난 다양한 경험을 하기 힘들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 내가 처한 곳에서 겨우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며 공부하는 정도이다. 댓글의 내용이 조금 속상했지만,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 후, 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할까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전업주부이지만 주부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수첩에 적어 제목도 만들고 목차도 구성해 보았다. 하지만 매번 이야기를 끝까지 이끌어가지 못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관해 쓰기 위해서는 충분한 공부가 필요하거나 특정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찾아가 인터뷰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컴퓨터에는 제목과 목차, 주제만 써 놓은 폴더가 늘어났다. 내용은 없는 텅 빈 폴더를 삭제하진 않았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좀 더 경험이 쌓이고, 좀 더 지식이 많아지면 다시 시작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내가 지금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내가 매일 하고 있는 이 일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장 큰 고민은 이제 겨우 책 한 권 출간한 병아리 작가인 내 이야기를 읽어 줄 독자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글쓰기 관련 책을 출간한 작가들은 모두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국문학과 졸업은 물론이거니와 이미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베스트 셀러 작가들이다. 글쓰기 강연을 나가고 글쓰기 특강을 하는 분들이다. 잘 나가는 사람들이 쓴 책 사이에서 딱 한 줄의 경력만 가지고 있는 내가 쓴 글을 누가 관심이나 가져줄까?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써보자고 생각했다. 글쓰기 전문가의 시선이 아니라 글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이 글쓰기를 만난 후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솔직하게 써보자고 마음먹었다. 글을 잘 쓰는 구체적인 방법이나 화려한 문장이 들어간 책도 좋지만 솔직한 고백과 담백한 경험이 담긴 글도 때론 훌륭할 수 있으니까.

처음 책을 쓸 때는 어떻게 목차를 구성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한 꼭지가 어떤 의미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출판업계에서 통용되는 용어와 일반적인 상식이 없었기에 답답했다. 무작정 써나가는 것 또한 한계가 있었다. 아이들이 부모가 허용해주는 경계선 안에서 자유롭게 놀아야 건강한 아이로 자랄 수 있듯, 글을 쓸 때도 그 경계선이 필요함을 느꼈다.

내가 쓰고 싶은 책과 비슷한 부류의 책을 구입해 펼쳐 보았다. 큰 제목 몇 개가 들어가야 하고, 목차는 몇 개가 있어야 하는지 세어보았다. 여러 책을 비교해 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작게는 3개부터 많게는 10개까지의 장이 있었다. 각 장마다 5개 전후의 소제목이 있었다. 그리고 총 30개 전후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었다.

어떤 책에서는 목차를 먼저 구성해 놓고 소제목에 맡는 내용을 쓰면 된다고 했다. 난 그게 조금 어려웠다. 목차를 구성하는 방법을 몰랐을뿐더러, 처음부터 전체적인 내용을 생각해 놓고 쓰기 시작하는 것이 초보자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생각나는 모든 내용을 적었다. 그 후 내용이 비슷한 꼭지를 모았다. 그제야 목차를 정리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대략의 목차를 먼저 구성했다.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았다. 비록 책을 여러 권 출간하거나 글쓰기 강의를 한 경험은 없지만, 3년 동안 거의 날마다 쓰면서 느끼고 경험했으니 할 말은 차고도 넘쳤다. 물론 글쓰기에 관한 글을 쓰더라도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배제할 수는 없었다. 글쓰기는 내 일상이었고, 그 일상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 내 가족이기 때문이다.

과연 사람이 가족 이야기를 빼놓고 글을 쓸 수 있을까? 사회를 이루는 최소의 단위가 가족이다. 부모가 있기에 우리가 있고, 우리가 있기에 자녀가 있다. 형제자매는 최초의 사회인 가정 안에서 사회를 배우고, 부모는 자녀를 키우며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다. 우리가 태양계를 이야기할 때 태양이 꼭 필요하듯, 사회, 경제, 정치 그리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 역시 가족을 빼놓을 수 없다. 예술가들의 삶을 적어 놓은 “다락방 미술관”이라는 책에는 예술가의 어린 시절과 부모와의 관계가 많이 나온다. 예술가의 사랑 이야기, 아내 또는 남편의 이야기가 나온다. 모든 이야기는 가장 익숙한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글을 잘 쓰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것은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많이 써 놓는 일이다. 나로부터 시작해서 가족과 친구로 그리고 더 넓은 세계로 점점 넓어질 수 있게 써야 한다. 써 놓은 글이 적으면 또 뭘 써야 할까 고민이 되지만, 이미 많은 글을 써 놓았다면 고치기만 하면 된다. 새로운 글을 쓰는 것보다 이미 써 놓은 글을 고치는 일이 훨씬 쉽다.

이 글을 쓰기까지 10번 정도 고친 것 같다. 처음엔 미리 써 놓은 소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쳤고, 소제목에 맡게 글을 쓰다가 내용이 맞지 않은 것 같아 다시 지웠다. 소제목을 고친 후 내용을 써 내려갔다. 저장을 분명 한 것 같았는데 나중에 열어보니 내용이 날아가고 없었다. 머리를 쥐 흔들며 처음부터 다시 썼다. 다시 쓴 글을 읽어보니 여전히 이상했다. 이미 써 놓은 부분을 삭제하고 다른 내용을 첨가했다. 아직도 고칠 부분이 남았음을 알고 있다.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사실은 나도 잘 몰라서 매번 글을 쓰고 매번 고치고 있다.




이전 14화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다시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