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쓰기와 권태기에 빠지다.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드라마를 보았다.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드라마를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쓰지 못하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언어와 시선에 감동했지만 내 것으로 만들 수가 없었다. 앞으로 나가고 싶은데 그 방법을 잊어버렸다. 다시 몸을 일으키고 싶은데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왜 쓰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시작되었다. 사소한 내 일상을 쓴다고 해서 누가 관심이나 가져 줄까? 공감이나 해줄까? 내가 쓰고 있는 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전문적이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은 주제들. 삶을 파고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유머스럽지도 않은 글. 자아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방황했던 모습이 글쓰는 내 행위에 고스란이 드러났다. 가만히 마음속을 들여다보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지난겨울, 말라버린 화분 몇 개를 베란다에 내다 놓았다. 뉴델리의 겨울은 생각했던 것보다 꽤 추웠다. 두꺼운 옷을 껴입고 수면 양말을 신고 살았다. 전기장판을 틀고 이불속에 들어가 웅크리며 지냈다. 두 달여간 겨울잠을 자고 일어나니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이른 봄이 찾아왔다. 전기장판을 끄고 겨울 옷을 정리했다. 따스한 햇볕이 비치는 베란다에 나가 청소를 했다. 베란다 가득 먼지가 쌓여 있었다. 비둘기들이 오다가다 똥을 잔뜩 싸 놓았다. 잔뜩 짜증 섞인 손으로 바닥에 물을 뿌렸다. 단단하게 굳어버린 비둘기 똥을 치우려 빗자루로 쓱쓱 문질렀다. 부지런히 청소하고 나니 베란다가 깨끗해졌다. 의자를 가져다 놓고 볕이 좋은 자리에 놓았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지난겨울에 내다 놓았던 화분 중에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이미 말라버려 갈색으로 변한 이파리 사이로 새끼손톱만큼 작은 초록이가 빼꼼히 세상을 향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화분을 집 안에 들여 놓고 물을 주었다. 며칠이 지나자 초록이는 점점 키가 자라났고 그 옆으로 다른 초록이가 또 올라왔다. 그 모습이 너무 기특해 날마다 곁에 앉아 싹이 올라와 잎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좋은 흙을 사다가 분 갈이를 해주고 집안에서 가장 환하고 볕이 잘 드는 자리를 내주었다.
내 마음에도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왔음을 깨달았다. 지금은 작은 새싹이지만 따뜻한 햇볕과 적절한 물이 있다면 점점 자라나 이파리가 되고 줄기가 되고 언젠가는 꽃도 피우리라는 것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 새싹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잔뜩 먼지가 낀 내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하라고, 작은 희망의 싹에 어서어서 물을 주라고.
“작가님, 잘 지내시죠? 오랜만에 작가님 글 읽으러 들어왔어요. 시댁에서 한달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왔는데 8개월 아기와 종일 집에 있으려니 너무 힘드네요. 아무쪼록 건강 유의하시고 글 많이 올려주세요. 작가님 글은 저에게 힐링이 됩니다. 언제나 응원해요.”
오래 된 브런치 독자 한 분이 오랜만에 글을 남기셨다. 한 동안 보이지 않아 더 이상 내 글을 읽지 않은가 보다 생각했다. 클릭 한번으로 구독과 취소를 쉽게 할 수 있으니, 읽기 싫은 글의 구독을 멈춘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고심하여 글을 써서 발행했는데도 구독자가 느는 것이 아니라 줄어드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내 글이 별로인가? 더 이상 내 글을 읽기 싫은건가? 하는 나약한 마음이 들었다. 글을 그만 써야할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봄이 되어 따뜻한 햇살이 새싹을 감싸 안고 다시 숨을 불어넣어준 것처럼, 그 댓글은 나를 온와하게 감싸 안아 주었다. 내 마음에 물을 듬뿍 주고 볕이 잘 드는 곳에 쓸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쓰게 되었다.
추운 겨울에서 따뜻한 봄이 되면,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이 되면 마음도 계절처럼 변화를 받아들이며 성장한다. 작은 변화에 민감하게 마음을 쓰며 다시 쓰는 사람으로 돌아온다. 이러다 다시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겨울이 찾아오겠지.
사람의 인생을 계절로 비교한다면 난 지금 어느 계절에 서 있을까? 뜨거운 여름 즈음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너무 많아서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시기. 뜨겁게 달궈진 태양 아래서 땀을 흘리며 일 하는 나이. 그러다 그늘로 들어가 잠깐 쉬며 땀을 식힐 줄 아는 나이. 달리고 달리다 잠시 휴가를 내어 더위를 피해갈 줄도 아는 나이. 그리고 나만의 열매를 만들기 위해 내면의 나와 무던히도 싸우며 성장하는 나이. 내 인생의 가을이 되면 어떤 열매를 갖게 될지 궁금하다. 화려하진 않아도 먹음직스러운 과일이면 좋겠다.
마음이 자꾸만 글을 써 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은 글쓰기 전의 삶과 후의 삶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아는 모양이다. 내 인생의 열매를 잘 만들기 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이것이라고 말한다. 오십 대가 되고 육십 대가 되어도 나는 계속 글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고, 인생의 계절이 바뀌어 머리카락이 백발이 되어서도 내 사소한 경험을 읊조리며 새하얀 종이 위에 쓰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