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차려진 문장에 숟가락 얹는 일_필사

4장. 쓰기와 권태기에 빠지다.

by 선량

가끔 내가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볼 때가 있다. 그 중엔 꽤 잘 쓴 글도 있지만, 쓰레기처럼 느껴지는 글도 있다. 특히 쓰는 삶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의 글들을 읽다 보면 얼른 삭제 버튼을 누르고 싶어진다. 하지만 창피한 마음을 꾹 눌러 참는다. 서툴렀던 내 과거의 모습이 남아 있어야 성장할 내 미래의 모습도 다가올 것 같기 때문이다.

필사의 중요성은 여러 책에서 말하고 있다. 어느 작가는 위대한 소설 ‘토지’를 필사하며 글공부를 했다고 하고, 또 어떤 작가는 자신이 필사한 글들을 모아 책 한 권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나에게 필사란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식탁 앞에 차려 놓는 일이다. 보기 좋은 음식이 맛도 좋다고 했던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남이 해준 음식이라고도 했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 앞에서 군침을 삼킨다. 하지만 먹진 못한다. 내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3개의 노트가 있다. 하나는 필사 노트, 다른 하나는 글감 노트, 또 다른 하나는 마구잡이 노트이다. 마구잡이 노트는 항상 가방에 들고 다닌다. 그냥 아무거나 메모하고 적는다. 반면 글감 노트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의 주제나 제목, 대충의 목차를 적어 둔다. 글감은 내가 찾고 싶을 때 바로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일과 중 문득문득 떠오른다. 특히 아무 생각 없이 설거지할 때 글감이 잘 떠오른다. 주방에서 설거지할 때는 아무도 날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근처에 아무도 오지 않는 편이다. 그릇을 씻고 헹구고 정리하고, 또 씻고 헹구고 정리하는 동안 머릿속도 씻겨지고 헹궈지고 정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고 내가 설거지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집안일 중에 설거지를 가장 싫어하니까.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기에 의무적으로 하는 일이다. 의무적으로 단순 노동을 하다 보면 생각이 많아지고 그중에 괜찮은 글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필사 노트는 말 그대로 필사를 하는 노트이다. 책을 한 권 다 읽은 후, 인상 깊었던 문장, 마음을 울리는 문장, 공감한 문장, 그리고 나라면 절대 쓸 수 없을 것 같은 문장을 쓴다. 특히 글쓰기 관련 책을 읽은 후에는 글쓰기 팁이나 조언을 꼭 적어 놓고 내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읽는다.

여러 책 중에서도 가장 정성 들여 필사하고 있는 책은 바로 은유 작가님의 “쓰기의 말들”이다. 그 책에는 쓰기 위한 말들이 가득 들어있는데, 내가 만나보지 못한 책들과 문장들이 친절하게 쓰여 있다. 처음엔 은유 작가님이 언급한 책들을 모두 읽어보려 했지만, 의지만 앞설 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그 책에 나온 모든 쓰기의 말들을 필사하는 일이었다. 그 문장들을 필사 후 내가 느낀 감정을 몇 자 더 적어서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다.

“누군가 꿈을 이루기에 앞서, 만물의 정기는 언제나 그 사람이 그동안의 여정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시험해보고 싶어 하지, 만물의 정기가 그런 시험을 하는 것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네. 그건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 말고도, 만물의 정기를 향해 가면서 배운 가르침 또한 정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세.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기하고 마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지. 사막의 언어로 말하면 ‘사람들은 오아시스의 야자나무들이 지평선에 보일 때 목말라 죽는다’는 게지.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 것이네.”[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

꿈을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연금술사에서 말하는 초심자의 행운처럼 책 한 권을 출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지금 사막 위에 있다. 산티아고가 사막을 걸으며 마음의 소리와 대화하듯, 날마다 글을 쓰며 내 마음의 소리와 대화하고 있다.

‘이렇게 쓴다고 뭐가 달라지겠니? 누가 네 글을 알아봐 주기나 하겠니? 좋은 글을 쓸 수나 있겠니?’

이런 마음의 소리가 들리면 의기소침해지고 만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미 저만치 앞에서 달려가는 사람들의 뒤통수만 보며 걸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난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마음이 들때마다 내가 꾸었던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을 했다.

내가 꿈꾸는 오아시스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내 꿈은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감동받길 원하는 것이다. 스스로 성장해서 당당히 세상 앞에 서는 것이다. 혼자 글을 쓰며 노력했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인정받는 것이다. 열심히 사막을 걷다 오아시스의 야자나무가 지평선에 보이자 목말라 죽어버리는 사람 중 하나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다른 작가들이 써 놓은 좋은 문장들을 내 손으로 적는다. 그리고 나만의 오아시스를 꿈꾼다.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좋은 문장을 쓸 수 있기를. 누군가가 내 글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내가 써 놓은 문장을 따라 쓸 수 있기를. 내가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 올려놓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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