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쓰기와 권태기에 빠지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랑의 권태기는 존재한다. 사랑하지 않음과 권태기가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같은 의미는 결코 아니다. 권태기에 뒤돌아서서 상대방을 밀어낸다면 결국 사랑하지 않는 관계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권태기를 지혜롭게 잘 보낸다면 불같은 사랑은 아닐지라도 끈끈하고 오묘한 사랑은 지속할 수 있다.
홍 군과 결혼 후 화내며 싸우기도 했고, 짐 싸 들고 언니 집으로 가버리기도 했다. 그가 하는 행동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꼴 보기가 싫은 적도 있었고,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짜증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딱 한 번 그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 권태기 같아.”
권태기가 오니 매 순간이 무기력했다. 아이들도 남편도 날 좀 건들지 말아 주었으면 했다. 조금의 거리가 필요했고 시간이 필요했다. 다행히도 남편은 그런 나를 이해해 주었다. 그와 터놓고 대화를 하면서 내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때, 내가 그를 밀어낸 만큼 그도 나를 멀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고 각자의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다행히도 그는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대신 노력을 해주었다. 내 감정을 이해해 주는 것만으로도 권태로웠던 내 마음은 회복이 되었다. 출근하며 쌩하니 가버리는 것 대신 나를 한번 토닥이며 안아주는 행동, 집안일에 지친 나 대신 설거지를 해주는 그를 보며 권태감은 조금씩 사라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권태기가 있듯, 사람과 글쓰기 사이에도 권태기가 있다. 이 권태기를 어떻게 잘 대처하느냐에 따라 글쓰기와 이별을 하기도 하고 글쓰기와 다시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나에게도 글쓰기 권태기가 찾아왔다. 뭔가 쓰고 싶은데 쓸 말이 떠오르지 않아 쓸 수가 없었다. 혼자서 짝사랑만 하다가 상대방이 알아주지도 않는 것 같은 서러움이 밀려왔다. 뭐라도 매일 쓰던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고, 무엇을 쓸까? 글감을 찾아 헤매던 생각은 멈춰버렸다. 글쓰기가 내 삶에 활력소가 되었었는데, 글 쓰는 일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억지로라도 써 보려규칙적으로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켰지만,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내 눈도 함께 깜빡거렸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컴퓨터를 닫지는 못하고 사 놓은 전자책을 펼쳤다. 글을 직접 쓰진 않지만, 활자와의 관계는 놓고 싶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그동안 게을리했던 책이나 실컷 읽어보자 생각했다.
글쓰기와 책 읽기는 함께 해야 한다는데 이상하게 나는 글을 쓸 때는 책 읽는 것을 소홀히 하게 되고, 책에 집중하면 글을 쓸 시간이 줄어들었다. 두 가지를 한 번에 하기가 힘들었다. 이번엔 글쓰기를 잠시 멈추고 책에 집중하기로 했다.
난 다독가는 아니다. 위대한 작가들은 모두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책을 많이 읽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흥미가 있는 책은 하루, 이틀 만에도 금방 읽을 수 있지만 어려운 말이 잔뜩 나열된 책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끝내지 못한다. 어째서 인문학책이나 역사, 교양책들은 펼치기만 하면 잠이 올까? 그래서 내가 하는 책 읽기 방법은 바로 ‘부담 없이 읽기’이다.
어떤 이들은 다독을 권장한다. 하루에 한 권씩 읽는 사람들, 한 달에 열 권 이상의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슬로우 리딩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책 한 권을 6개월 동안 읽으면서 책의 모든 내용을 샅샅이 습득한다. 내가 하는 ‘부담없이 읽기’는 단기간에 읽는 책과 장기간 읽는 책을 동시에 읽는 방법이다. 그래서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무려 여섯 권이나 된다.
빠르게 읽는 책들은 대부분 소설책이나 글쓰기 관련 책 그리고 가벼운 에세이이다. 이 책들은 하루, 이틀 만에 읽을 수 있다. 다 읽은 책은 인스타그램에 짧은 소감을, 블로그에는 긴 서평을 쓰고 마무리한다.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읽고 있는 책은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책이거나 익숙하지 않은 어휘가 많아서 곱씹으며 읽어야 하는 책들이다. 이 책들은 빨리 읽고 서평을 써야 한다는 부담을 버리고 최대한 책 속의 지식을 이해하며 읽는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는다.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책을 통해 얻어야 하고, 나에게 익숙한 어휘 대신 생소한 문장들을 만나야 한다. 하지만 이 일이 부담되고 즐겁지 못하다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다. 결국 글을 쓰는 일도 책을 읽는 일도 나의 내면과 관련되어있기 때문에 내 마음이 편안할 때 글도 써지고 책도 잘 읽을 수가 있다.
글이 써지지 않아 종이책과 전자책을 번갈아 가며 읽었다. 그중에 읽게 된 은유 작가님의 ‘글쓰기의 최전선’은 내가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좀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학식이 높은 사람, 문장력이 탁월한 사람, 감각이 섬세한 사람, 지구력이 강한 사람 등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고도 많다. 그런 생각을 하면 기운이 빠진다. 이미 훌륭한 글이 넘치므로 나는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내 삶과 같은 조건에 놓인 사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나의 절실함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나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또 기운이 난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이다.”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메멘토]
이 글은 나를 다시 컴퓨터 앞에 데려다주었다. 머리가 아닌 손가락이 움직였다. 내가 읽은 책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내가 쓰는 글은 나만 쓸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일단 쓰라고 말하는 은유 작가님의 가르침에 이끌렸다.
내 고유의 글이 아닌, 내가 읽은 책에 대한 서평을 쓰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내가 읽은 책에 대한 느낌과 감상, 감동한 구절과 그 이유를 쓰다 보면 나는 다시 쓰는 사람이 되어있다. 그렇게 쓰기는 나를 밀어내지 않고 나를 다시 감싸주었다. 나는 다시 쓰기와 끈끈하고 오묘한 관계가 되었다.
“독서는 책을 읽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다. 한 사람의 시선과 삶의 단편을 기록한 책을 통과할 때마다 나는 읽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었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홍승은/어크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