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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n 20. 2020

수고로운 삶 앞에 겸허히 서다.

인문학은 모르지만, 행복하고 싶어서.



몇 달 만에 차를 타고 외출했습니다. 럭 다운은 끝났지만, 확진자가 무섭게 발생하고 있어서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했습니다.


오랜만에 본 거리의 모습은 제 예상 밖이었어요. 도로는 차로 가득했고, 가게들은 모두 문을 열고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버스도 운행이 되고 있었어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다들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쓰고 있었습니다. 마스크가 없는 사람은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리던지 숄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뉴델리의 체감온도



뉴델리는 미세먼지가 심하기로 악명이 높은 도시입니다. 해마다 세계 1위를 하고 있죠.

건기에 특히나 심한데요, 미세먼지 수치가 500이 넘는 날이 수두룩 했어요. 웃긴 것은 그런 날에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 미세먼지가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위협이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며 살아가는 거 같았어요.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인도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집 근처 문구점에 갔었는데, 카운터에 마스크와 소독제가 준비되어 있었어요. 소독제 제품도 몇 달 사이에 개발되었는지 액체형, 스프레이형, 젤형 등 다양한 형태로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이에요.





차가 신호대기를 하는 중에 잠시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이 답답한 상황이 언제 끝날지,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언제 돌아올지.... 생각할수록 슬퍼졌습니다.


차 안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속이 울렁거리고 더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차를 타기 전 뿌렸던 소독제 냄새가 콧속으로 훅 들어왔습니다. 그때 잔뜩 찌푸린 두 눈에 한 장면이 들어왔습니다.


두 명의 아저씨가 마스크를 쓰고, 길거리 좌판에서 가스불을 피우며 음식을 만들고 있었어요.

매우 흔한 인도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그들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요즘 인도는 가장 더운 시기입니다. 우기가 시작되기 전이라 습하고 뜨거운 공기가 무겁게 짓누릅니다. 집에서 차가운 물로 씻고 싶어도 뜨거운 물만 나오는데요, 물탱크가 옥상에 있기 때문에 뜨겁게 댑혀진 물이 나옵니다. 가끔은 너무 뜨거워서 씻기가 힘들 정도예요.




손님은 몇 명 보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가스 불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고, 아저씨들은 바쁘게 요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에어컨 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거실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이 조금은 힘겹게 느껴졌습니다. 한참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집에만 있어야 하는 게 불쌍해 보였습니다. 매일 똑같은 하루가 지겨웠습니다.




사실 행복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부유한 환경과 풍족한 환경에 산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고,  방 한 칸에 온 가족이 함께 부대끼며 살아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죠.

저 역시 한 방에서 언니들과 다 함께 살던 때가 가장 행복했거든요.


뜨거운 불 앞에서 마스크를 쓰고 요리를 하는 사람들이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 들어온 그 모습을 본 순간, 그들의 삶 앞에서 겸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들의 삶에 대한 수고는 제가 하는 수고에 비해 훨씬 힘겨워 보였습니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모든 만물이  피곤 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 없나니 눈으로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전도서 1장 5~8절-


부귀영화를 누린 지혜의 왕 솔로몬은 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말했습니다. 돈도 명예도 지식도 지혜도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는 동안에는 수고하며 살다가 결국 흙으로 돌아가니까요.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사는 동안에는 수고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동안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마음밭에 달린 것 같아요. 솔로몬은 그의 행복과 삶의 의미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구했습니다.





뜨거운 여름날, 마스크를 쓰고 뜨거운 불 앞에서 요리를 하는 그들은 덥고 힘겨워 보이지만,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일할 곳이 있고, 돈을 벌 수 있고 또 가족이 있을 테니까요.



지금 나는 행복한지 아닌지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 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고, 보호받을 수 없으며, 믿을만한 병원도 없습니다. 모아놓은 돈도 많지 않고 집도 없습니다.


힘들긴 하지만, 불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까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 역시 삶의 의미를 믿음에서 구하고 있으니까요.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들의 수고를 본 순간, 삶 앞에서 겸손해졌습니다.  

부디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기를,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기를, 오늘 손님이 많이 오기를, 그리고 그들이 행복하기를 간절히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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