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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n 18. 2020

내 시야 속 세상과 편견

행복일까? 아닐까?

제 큰아이에게는 라파엘이라는 베스트 프렌드가 한 명 있습니다.  3월 중순에 만난 후, 전국 봉쇄령 때문에 기약도 없이 헤어지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스카이프로 영상통화를 하거나 함께 브롤 스타즈  게임을 하면서 친구를 직접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웃긴 것은 라파엘이 프랑스에 살고 있는 다른 친구들을 스카이프로 초대해 얼굴도 알지 못하는 다른 친구들과 제 아이가 친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끔은 중간 다리 역할을 해준 라파엘이 없는데도 제 아이와 프랑스에 사는 아이가 통화도 하고 게임도 하더군요. 정말 정말 신기했어요.



지난달, 럭 다운은 끝났지만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뉴델리에선 날마다 2천 명 정도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친구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 드디어 오늘, 날을 잡아 라파엘과 제 아이를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아이는 신나게 놀고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습니다.



라파엘은 프랑스 아이지만, 2살 때부터 인도에 살았다고 해요. 그 아이의 엄마는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빠도 바쁘고 엄마도 바빠서 아이를 돌봐 주는 사람은 현지 메이드예요.  

라파엘은 엄청나게 밝은 성격의 아이예요. 스카이프로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노래를 부릅니다. 어찌나 시끄럽게 떠드는지,

‘조용히 좀 해 줄래?’

라고 말할 정도예요. 하지만 그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듣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나죠.



내일은 같은 반 친구 안드레아의 생일입니다. 친한 친구 몇 명만 불러서 작게 생일 파티를 하는 모양인데, 제 아이도 초대해 주었어요. 2월 중순부터 학교에 가지 못했으니, 4개월 만에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걱정이 조금 되긴 했지만, 소수의 아이들이 집에서 만나 잠깐 노는 것이기에 일단 걱정은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생일파티에 초대받은 아이들이 모두 프랑스 아이들이더라고요.

제 아이가 프랑스 학교에 다니고 있긴 하지만, 다국적 아이들이 많이 다니고 있거든요. 생일인 친구와 엄청 친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나쁜 사이도 아니었나 봅니다.

제 아이를 잊지 않고 챙겨준 안드레아에게 괜히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요. 제 아이가 학교 생활을 잘했나 보다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이나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특히 프랑스에서 동양인에 대한 차별 대우를 많이 받았다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었어요. 아마도 제 아이들이 프랑스 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 뉴스가 더 귀에 들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프랑스에 한 번도 가 보지 못했어요. 프랑스어도 못하고요. 아이들이 프랑스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프랑스 역사와 문화, 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만난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은 모두 프랑스 국제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이에요. 방글라데시, 뭄바이, 뉴델리에서 만난 프랑스 사람들은 언론이나 다른 사람들의 글에서 본모습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동양인이라고 무시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하고,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국에 한 번이라도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한국에 대한 호감이 굉장히 높았어요.


학교 안에서도 인종차별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안 좋은 일을 겪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당혹스러웠어요. 내가 만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으니까요.


방글라데시, 뭄바이에서 프랑스 학교에 다닐 때 저희들을 가장 잘 챙겨준 사람은 바로 흑인 친구들이었습니다.

학교에 대해 잘 모를 때 이것저것 알려주고, 집에 초대해 주고, 친구들끼리 잘 지내도록 도와주었어요. 그래서 전 흑인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좋게 남아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일어나는 흑인에 대한 안 좋은 일들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몹시 어려워요. 나에게 도움을 많이 주었던 친구들이 떠오르거든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 안에서 사고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시야 속 세상에서 살아가죠. 시야 밖의 세상은 “한다더라.”가 되고 맙니다.



“유럽 사람들은 동양사람을 무시한다더라.”

“흑인들은 무섭다더라.”

“인도 사람들은 더럽고 거짓말을 잘한다더라.”

“무슬림은 과격하고 여자를 무시한다더라.”



전 이 말이 참 무섭다고 생각해요.  편견을 심어주거든요.

편견이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하여 그것에 적합하지 않은 의견이나 견해를 가지는 태도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특정 인물이나 사물 또는 뜻밖에 일어난 일에 대해 가지는, 한쪽으로 치우친 판단이나 의견을 말한다고 해요.

이런 편견은 진실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도 전에 결론을 내려버립니다. 내가 경험한 게 완전한 진실이라고 믿어버리게 되죠.


몇 년 전에 어느 유명 작가님의 뒷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 작가님의 책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죠. 결국 그 작가님에 대한 편견이 생겨버렸고, 그분의 책을 읽고 싶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 작가님의 책은 인기가 좋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도 않았고 그냥 듣기만 했는데도 편견에 사로잡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유럽 사람들 중에 동양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습니다. 흑인들 중에 무섭고 위험한 사람도 있지만, 친절하고 좋은 사람도 많습니다. 인도 사람들 중에 더럽고 거짓말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말 정직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도 있습니다. 무슬림 사람들 중에 위험한 사람도 있지만,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 중에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고, 동남아 사람들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고,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요.



우리는 모두 자신의 시야 속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 시야는 내가 보고 경험한 것이죠.

저처럼 좁은 시야와 편견 속에서 살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년의 사람들에게 다시 20대가 된다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다들 “여행”이라고 대답합니다. 웃긴 것은 시간과 돈이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도 “여행”이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어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게 바로 여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이가 어릴 때 훌쩍 떠나는 여행도 좋고, 나이가 들어 슬렁슬렁 다니는 여행도 좋고요.


어쩌면 우리는 여행에 대한 갈망만큼 더 넓은 시야 속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 게 아닐까요?


넓은 시야를 가지고, 편견 없는 넓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인종 차별도, 사람에 대한 편견도 사라지겠죠. 그러면 지금보다 한 뼘 더 행복한 세상이 될까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여행을 가긴 틀렸고, 전 일단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작가님의 책을 사야겠습니다.



내 시야속 세상 ©️선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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