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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n 27. 2020

실패라 쓰고, 경험이라 읽겠습니다.

인문학은 모르지만, 행복하고 싶어서.


아침부터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곧 비가 쏟아졌어요. 요즘 뉴델리의 날씨는 변화무쌍합니다. 비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거든요. 태풍처럼 바람이 부는가 하면 비가 오고, 천둥이 치는가 하면 갑자기 해가 쨍합니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지만, 저희는 여전히 갈 곳이 없고 나갈 수도 없으니, 일기예보는 무용지물입니다.


인도의 확진자는 매일 약 만 오천 명씩 증가하고 있어요. 그중에 뉴델리에서만 3천 명이 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러려니 하고 있어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에 불안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 안온합니다.

방구석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식료품과 반찬거리를 주문해서 먹고, 생필품은 남편이 근처 마트에 얼른 가서 사 옵니다. 이렇게 단순하게 살아도 살아진다는 것이 조금 신기할 따름이에요.



바람이 생각보다 많이 불어서 베란다에 내다 놓은 망소와 망지가 걱정되었습니다.

망소와 망지는 망고 씨를 발아시킨 후 흙에 심겨놓은 망고 씨인데요. 너무 관심을 보이면 잘 자라지 않는다는 말에, 이틀 동안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무진장 신경 쓰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실 조금 기대를 했어요. 이 정도로 신경을 안 썼으니, 이제 뿌리를 잘 내리고 싹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바람은 막아줘야겠다는 생각에 베란다 문을 열고 망소와 망지를 보러 나갔어요.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하고 손으로 꾸욱 눌러보았습니다. 뭔가 이상했어요.  망고씨와 흙이 닿는 부분에 하얀 게 보였습니다. 혹시나 하고 손으로 망고씨를 잡아당겨보니 너무 쉽게 쑥 빠저버리는 것입니다.


너무 허무했어요. 뿌리는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끝부분이 썩어 있었습니다. 하얀 건 바로 곰팡이였습니다. 다른 망고씨 하나를 더 잡아당겨보니, 역시나 쑥 뽑혔습니다. 그 아이도 뿌리가 썩어있었습니다.

썩어버린 망고씨를 들고 멍하니 앉아있었어요. 뭘 잘못했는지, 뭐가 문제인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더군요.

덥고 습한 날씨 때문인지, 흙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인지.....

처음부터 잘 자라지 않는 씨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여러 번 씨앗 심기에 실패했어요. 그전에 시도했던 멜론 씨도, 귤 씨도, 오렌지 씨도, 흙에 심기만 하면 모두 썩어버렸습니다.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습니다. 망고씨는 다른 씨와 조금 달랐거든요. 뿌리도 제법 나왔거든요. 다른 사람들의 포스팅을 보면 정말 쑥쑥 잘 자라던데……



 그러고 보니, 남들에겐 쉬워 보이는 일이 유독 저에겐 어려운 일들이 있었어요.


종합병원을 그만두고 야심 차게 혈액투석 전문 간호사가 되어보겠다고 투석 전문 병원에 입사했습니다. 개인병원이긴 했지만, 환자가 꽤 많았어요. 첫 두 달 동안은 일도 열심히 배우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전문적인 기술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몇 년씩 그곳에서 일을 하고 계셨었죠.

그런데 두 달이 넘자 그 일이 너무나도 하기가 싫어졌습니다. 혈액투석 전문 간호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어요. 한 번씩 응급상황이 발생하는 상황과 투석하는 동안 긴장하며 환자를 캐어해야 하는 일이 큰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결국 3개월 만에 그만두고 말았어요.

그게 너무나도 창피했어요. 그 어려움 하나도 견디지 못했다는 사실과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싶었죠.

한동안 자괴감에 빠져 살다 코이카 봉사단에 지원하게 되었고, 합격하게 되어 네팔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땐 그게 실패처럼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만두길 잘했던 것 같아요. 네팔에 간 후 제 인생이 180도 변하게 되었거든요. 거기서 지금의 남편도 만났고요. 그때 그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아마 없을 겁니다.


이런 일은 또 있었어요. 네팔에 다녀온 후, 병원을 알아보다가 개인병원 소아과에 취직을 하게 되었어요. 3교대 하는 종합병원엔 죽어도 들어가기 싫었거든요.

소아과에 간 이유는 제가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했고, 아이들을 케어하는 일을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오래 일하지 못했어요. 3개월 하고 나니, 너무 재미가 없는 거예요. 결국, 집이 너무 멀어서 출퇴근이 힘들다는 핑계로 그만두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서른이었어요. 나이 서른에 취직도 못하고, 결혼한 언니 집에 얹혀 지내는 제 모습이 실패자 같았습니다. 네팔에서 만난 남자 친구(현재 남편)는 그때 인도에서 일하겠다며 가버리고 없었습니다. 제 자신이 정말 한심했죠.

 그 후, 다시 메디컬 엔지오 단체에 취직이 되어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었어요.


3개월 동안 소아과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은 해외에 사는 동안 제 아이들에게 써먹었습니다. 아이들이 아플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슨 약을 먹어야 하는지 등.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썩어버린 망소와 망지를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그리고 이제 막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머지 세 개의 망고씨를 집 안으로 들였습니다.

뜨거운 햇살과 습한 공기 때문에 썩어버린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나머지 씨들은 집 안에서 키워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망고 2킬로를 더 사 왔습니다. 얼른 먹고 씨를 빼서 물에 담가 두어야겠어요.


실망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저에겐 아직도 망고 씨가 많이 남았으니까요.


실패했지만, 이 또한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신경 쓰지 않기, 베란다에 두지 않기. 두 가지의 교훈을 얻었으니까요.


“ 성공이든 실패든 나의 경험은 모두 소중하다.”

-백만장자 메신저/ 브렌든 버처드-
실패한 그림: 너무 못그려서 많이 창피한 그림




이 글은 “나도 작가다.” 공모전의 이번 주제와 딱 맞는 주제 인대요.

사실, 이번 공모전에 지원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해외에 살기 때문이에요. “나도 작가다.” 공모전에 합격하면 라디오 녹음을 해야 한다는데, 해외에 사는 작가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죠.

그래서 “나도 작가다.” 공모전은 국내파 작가들을 위한 공모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공모전 주제와 같은 글을 써버렸네요... 일부러 공모전을 위해 쓴 글은 절대 아닌데.....

그래서 그냥 지원하려고요.


어차피 안 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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