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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n 27. 2020

바람이 분다.

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


초여름이 이제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뜨거운 햇살을 뚫고 바람이 한 줌 불어왔다.

 

“바람이 불면 난 이상하게 슬퍼져. 어디선가 슬픈 소식을 싣고 바람이 내게로 오는 것 같거든.”

그 애가 흩날리는 머리 결을 한 손으로 쓸어 올리며 말했다.


“바람은 그냥 공기의 이동일뿐이야. 공기가 이동하면서 생기는 현상이지. 정확하게 말하자면, 낮에는 육지가 바다보다 빨리 따뜻해져서 육지의 대기가 위로 올라가고, 바다의 차가운 대기가 육지로 옮겨가게 되는 거지. 그래서 바다에서 육지로 바람이 불게 돼. 저녁엔 그 반대가 되는 거고. 우리가 바람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공기의 이동일뿐이야.”


나는 그 애의 눈썹에도 바람이 잠시 머물다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애의 눈썹이 떨리고 있었다.

 



 

바람이 분다.

 

아무 의미도 없던 바람이,

그저 공기의 이동일뿐이었던 바람이,

 

자꾸만 내게로 불어온다.


그 애의 안부를 바람에게 묻고 싶어 진다.

한껏 손을 뻗어

바람을 잡고 싶어 진다.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바람의 감각을 느끼며,

나는 그 애의 속눈썹에 머물다 간 바람을 생각했다.


바람이 분다.



작가의 이전글 실패라 쓰고, 경험이라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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