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리의 고난이 끝난 것은 아니오. 앞으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난관이 남아 있으며 나는 그것들을 모두 이겨 내야만 한다오.”
[오디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임명현 옮김, 돋을새김]
삶은 무엇일까?
내가 삶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했지만, 지독했던 시간이 축적될수록 삶이 나를 이끌어 간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이미 예정되어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인지, 아니면 무수한 선택들이 겹치고 겹쳐 지금의 인생을 만든 것인지. 니체가 말한 '영원히 반복되는' 영혼회귀의 삶이 터무니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게 진짜인 것 같아서 소름이 끼친다.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어떤 사람은 타인의 충고를 따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직관을 따르며, 또 다른 사람은 경제적 이득을 따르고 또 다른 사람은 평소에 품고 있던 신념을 따른다.
나는 주로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간다. 마음이 어디를 가리킬지 미리 알 수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그 마음 때문에 남편을 만났고, 여태 이러고 살고 있으니 마음의 방향을 따르는 것이 옳은 일인이 아닌지는 더 살아봐야 알 수 있겠다.
어떤 충고도, 직관도, 경제적 이득도, 내 안의 신념도, 마음의 방향도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지 않을 때 우리는 혼돈에 빠진다. 길을 가다 갑자기 내비게이션이 멈췄을 때의 당혹감이라고나 할까.
그때마다 과거에 내가 쓴 글 속에서 길을 더듬는다.
“행복하기 위해서 한국을 떠났다.”
나의 첫 번째 책에 썼던 이 문장은 헨젤과 그레텔의 조약돌이 되어준다. 문제는 가끔 빵조각이 되기도 한다는 데 있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마녀의 집 같은 곳을 만나 좌절하기도 한다.
우리가 지금 따라가고 있는 것은 조약돌일까? 빵조각일까?
2021년 7월, 밀라노에 가기 위해 뉴델리를 떠났다. 2022년 7월 밀라노에 집을 구했다.
집 없이 살았던 지난 1년 동안 열다섯 번 주거의 공간을 옮기며 짐가방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녔다. 일부러 이런 삶을 선택한 것은 절대 아니다. 누구보다도 안정된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은 매번 내 뜻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감을 느낄 때마다 온몸으로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일어나 식사를 준비했고, 해가 뜨면 글을 썼고, 밤이 되면 잠을 자거나 사랑을 나누었다. 숙소 예약 기간이 끝나면 다시 짐을 쌌다. 길바닦에 나앉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아이들과 웃었고, 기뻐했다. 남편과 다퉜고, 다시 화해했다. 그리고 마음껏 사랑했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탈리아 체류 허가증이 나왔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며, 우리의 난관이 끝난 것도 아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험난한 시간을 보낸 오디세우스의 고백처럼, 앞으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난관이 남아있다. 나는 이것이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다.
남편은 여전히 세상 모든 짐을 짊어진 한 마리 어린양처럼 한숨을 내 쉰다. 나는 그 입을 다물라고 타박한다. 열두 살 아들은 아빠의 한숨엔 패턴이 있다며 야유한다. 열 살 딸은 그런 우리의 대화엔 관심이 없고 오직 오렌지 캐러멜의 “까탈레나” 노래를 틀어 달라고 아우성이다. 한숨이 어느새 미소로 변한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우리의 삶이며 우리의 오디세이아이다. 나는 이것이 우리의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순간의 경솔했던 언행으로 10년 동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오디세우스.
경솔했던 판단으로 1년 동안 열다섯 번 이사하며 방황했던 우리.
힘겨운 상황이었지만 결코 웃음은 잃지 않았던 우리의 웃픈 여정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