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두려움과 용기는 항상 함께 있었다.
“자, 이제 내가 트로이를 떠났을 때 제우스께서 내게 내린 고난의 귀향길에 대해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오디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임명현 옮김, 돋을새김]
2021년 봄.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인도를 휩쓸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날마다 염려 가득한 메시지가 왔다. 시체 가득한 거리의 모습이 온라인을 휩쓸었다. 저녁이면 쾌쾌한 연기가 온 도시를 휘감았다. 그 연기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곡소리가 담긴 것 같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창문을 꼭꼭 닫고, 더욱더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먹고살아야 했다. 40도가 넘는 날에도 마스크 두 개를 쓰고 마트에 가서 식료품을 샀다.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줄줄이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지만, 수업은 언제나 아슬아슬했다. 담임 선생님이 감염되면 교장 선생님이 대신 수업을 했다. 영어 선생님의 코로나 증상이 너무 심해져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대신할 선생님이 없어서 영어 수업은 모두 취소되었다.
홍 군은 재택근무와 출근을 병행했다. 그가 거실에서 온라인 회의를 하는 날엔 나와 아이들은 숨을 죽였다. 회의를 하다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홍 군과 아이들이 안방과 거실을 차지하면 나는 주방 한편에 쭈그리고 앉아 한국 드라마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았다.
그저 그런 날들이 분주하게 흘러갔다. 그 안엔 미쳐 말할 수 없는 날것의 감정이 섞여 있다. 아무리 말한 들 직접 경험해보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감정들이었다.
“나 좀 힘든데….”
그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쭈그려 앉은 다리를 펴고 일어나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많이 안 좋아?”
“응, 좀 심하게 오네….”
“약 먹었어? 참지 말고 약을 먹지 그래.”
“좀 참아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 그냥 약 먹을까?”
“응. 참지 말고 그냥 먹어.”
그는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더니 작은 알약을 반으로 나눴다.
“그냥 한 알 먹는 게 어때?”
“아니야. 한 알 다 먹으면 좀 쌔더라고. 내가 조절해서 먹을게.”
“그래도 의사 처방대로 먹어야 되는 거 아닐까….”
“내가 잘 알아. 반만 먹어도 효과는 있으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해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안다. 그는 이미 자신만의 정념에 사로잡혀 있다. 실체가 없던 정념은 점점 신체 반응을 일으키며 자신의 존재를 뽐냈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정념은 이런 것들이었다.
“우주는 뭘까? 사람은 뭘까? 시간은 도대체 뭘까? 공간이란 뭘까? 우리가 있다는 건 뭘까? 공간을 나누는 건 뭘까?”
한 마디로 먹고사는 것과는 전혀 관련 없지만, 삶의 본질과 깊은 관련이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이런 고민이 깊어질수록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자신의 모습에 덜컥 겁을 내는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지고, 머리가 어지러운 심계항진이 일어났다.
신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걷고 또 걸었다. 무더운 뉴델리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계속 걸었다. 그러다 보니 피부는 인도 사람처럼 까맣게 탔고, 살은 죽죽 빠져서 내 몸무게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뼈와 살가죽만 앙상하게 남은 몰골을 볼 때마다 속이 탔다. 누가 보면 마누라가 밥도 안 챙겨 준다고 생각할 게 뻔했다.
그의 상태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하려 애썼다. 함께 걸어주고, 마사지를 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사랑? 이라기보다는 부부의 의리라고나 할까. 의리는 상대가 힘들 때 옆을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점점 지쳐갔다.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도 봐주어야 했고, 남편도 신경 써야 했다. 구겨진 시간과 감정이 쉽게 펴지지 않았다. 결국 임계점에 도달하고 말았다.
“우리 이제 돌아가자! 도저히 안 되겠어.”
나는 참고 참았던 말을 그에게 하고야 말았다.
이미 익숙해진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하는 일은 언제나 두렵다. 그게 여행이라면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뀌겠지만, 삶의 터전을 바꾸는 일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의식주를 바꾸는 일이기에 저 안에서부터 두려움이 밀려온다.
하지만 결단하지 않으면 변화는 없고, 변화가 없으면 퇴보할지도 모른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니까.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는 잔뜩 성취감에 젖여 있었다. 온갖 갑진 전리품과 포로들을 이끌고 부하들과 함께 고향으로 향했다. 그 길에 처음 들른 곳은 다름 아닌 트로이의 동맹국, 이스마로스였다.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하들은 그 도시를 약탈하고 전리품을 나누어 가졌다. 승리에 도취한 그들은 술을 마시고 가축들을 잡아먹으며 즐거워했다. 그때 오디세우스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이 도시를 빨리 도망쳐야 한다. 어서 서둘러라.”
떠나야 한다는 건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더 지체하다가는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예감. 지금이 아니면 떠나지 못할 거라는 느낌. 그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이기도 했다. 나는 이제 인도를 떠나야 한다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