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 속에서 현재를 읽다
매일 아침 '다음' 사이트에 들어가서 인터넷 뉴스를 읽는다. 경제에 관한 뉴스부터 정치와 관련된 뉴스, 사건사고와 연예인 관련 기사까지. 한 번에 쭈욱 훑는다.
뉴스만 보는 것은 아니다. 뉴스 기사 아래 달리는 댓글도 하나하나 읽어본다. 예전에는 기사에 내 의견을 남기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댓글을 달기가 조금 무서워졌다.
익명의 이름 중 하나였을 때는 스스럼없이 내 의견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출간작가가 된 지금은 내가 남긴 단 한 줄의 문장이 나의 모든 것을 대변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게다가 대중의 논리에 반하는 말을 하거나,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말을 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사정없이 침을 쏴대는 사람들이 더욱 무서워졌다.
그래서 매일 아침 뉴스를 보면서 혼자서 분개만 하다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조용히 뉴스 창을 닫는다.
그리고는 또 다른 고민을 시작한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우리는 조지 오웰의 작품 '동물농장'에 나오는 그 동물들과 뭐가 다른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동물농장에 나오는 개, 돼지가 되지 않으려면 뭘 해야 할까?'
동물농장은 조지 오웰이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1945년에 쓴 우화소설로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을 동물에 빗대어 우화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러시아에만 국한된 것은 결코 아닌 것 같다. 지금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이다.
선거 유세를 할 때는 그럴싸한 공약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지만 정작 권력자가 되면 일반 국민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는 권력자는, 동물농장을 무력으로 장악한 후 끊임없이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숫퇘지 나폴레옹을 닮았다.
제대로 된 쓴소리 한번 하지 못한 채 권력자에게 그저 찬양일색인 보좌관들은, 동물농장의 지도자인 나폴레옹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따르고 그의 손과 발이 되어 행동하는 스퀼러를 닮았다.
권력자를 등에 없고 법의 잣대를 사정없이 휘두르며 위협을 가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나폴레옹을 따라다니며 엄호하고, 사납게 으르렁대면서 다른 동물들을 위협하는 개들을 닮았다.
사실유무에는 상관하지 않은 채 권력자의 구미에 맞는 뉴스 기사만 쓰는 언론은, 먹을 것만 주면 스퀼러가 시키는 대로 따라 말하는 양과 오리들을 닮았다.
뭔가 잘못된 것 같지만, 과거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할뿐더러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해 돼지들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말과 당나귀들은, 아무 비판 없이 언론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는 어느 사람들을 닮았다.
과거의 진실을 왜곡하고, 현재를 위해 과거 자체를 바꿔버리는 돼지들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 과거사를 스스럼없이 왜곡하는 어느 집단을 닮았다.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노동을 하고, “내가 더 열심히 일한다”라고 말하며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당나귀 복서는, 먹고살기 위해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을 하는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
더 좋은 동물농장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당나귀 복서는 결국 나폴레옹과 돼지들에 의해 도살장으로 끌려가 생을 마감한다.
자유 민주주의인 우리나라는 4년마다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5년마다 대통령을 뽑는다. 매번 선거를 치를 때마다 '나를 뽑아달라. 나를 뽑아주면 어쩌고 저쩌고 할 것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는 그들이 내놓는 공약을 보고 뽑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당'을 보고 투표를 한다.
공약을 내놔봤자 지켜지는 것은 별로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무리 국회의원 개인이 공약을 시행하려고 해도 당에서 반대하거나 법률 집행이 어려우면 공약을 파기하게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도 아니만 오로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자신의 지역만 생각하는 집단이기주의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이번엔 일을 잘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4년 또는 5년마다 새로운 사람을 우리나라의 대표로 뽑는다.
하지만 그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진다.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고, 그들만의 리그이며, 앞에서는 싸우지만 뒤에서는 서로 나눠먹는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그러다 점점 정치피로를 넘어 정치혐오를 하게 된다. 정치혐오는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지며 정치적 무관심은 정치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웰은 권력 자체만을 목표로 하는 혁명은 주인만 바꾸는 것으로 끝날뿐 본질적 사회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다는 것, 대중이 살아 깨어 있으면서 지도자들을 감시 비판하고 질타할 수 있을 때에만 혁명은 성공한다는 것 등이 그가 작품 [동물농장]에 싣고자 한 메시지라 말하고 있다."
[작품해설:동물농장의 세계, 동물농장, 조지 오웰, 민음사/도정일 옮김]
우리가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
우리가 끊임없이 책을 읽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삶을 위해서이다.
국가의 정책은 내 삶의 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오늘자 뉴스에 의하면 정부가 1주일 최대 노동시간인 52시간인 현행제도를 최대 80.5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개편하는 방안을 확정했다고 한다.
바쁠 때는 노동시간을 늘려 일을 할 수 있고, 일이 없을 때는 노동시간을 줄여 장기휴가를 쓸 수 있다는 "선택근로"를 내놓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동환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선택근로가 아직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 것이다.
아니, 바쁠 때는 노동시간을 늘려 일할 수 있겠지만, 일이 없다고 해서 장기 휴가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결국 근로자들은 일을 하고, 위에 있는 경영자들은 법적으로 휴가를 내고 쉴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뉴스를 보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쓸모가 없어지자 도살장으로 보내진 당나귀 복서를 떠올린 것은 너무 심한 생각일까?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돼지들과 사람들이 서로 술을 마시고 카드게임을 하다 다투는 장면이다.
열두 개의 화난 목소리들이 서로 맞고함질을 치고 있었고, 그 목소리들은 서로 똑같았다.
그래, 맞아,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창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동물농장, 조지 오웰, 민음사/도정일 옮김]
동물의 적이었던 인간들과 한대 어우러져 놀고 마시는 돼지들은 더 이상 동물이 아니었다.
한때 우리의 적이었던 무리들과 한대 어우러져 놀고 마시는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욕심과 탐욕으로 가득한 돼지는 아닐는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동물농장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책을 읽고 깨어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