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 속에서 현재를 읽다
초등학교 6학년인 첫째 아이가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엄마, 난 옛날이 그리워."
이제 겨우 12년을 산 아이의 옛날은 과연 언제 적일까?
급기야 며칠 전에는 눈물을 글썽이며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닌가?
"엄마, 아빠랑 함께 시간을 보냈던 옛날 말이야. 함께 책 읽고 책놀이도 하고, 함께 레고 조립도 하고, 싸움 놀이도 하고, 거실에서 팝콘 먹으면서 영화도 같이 보고...."
반면에 나는 지금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너희들이 어렸을 적에는 엄마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 잘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도 힘든 일이 분명 있었으며 너희가 기억을 못 할 뿐이라고 말했다. 거기에 더해 엄마는 너희들이 어렸을 적에 너무 힘들었다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내뱉고 말았다.
아이와 나는 각자 원하는 것만 기억하는 것 같다. 아니면 기억을 왜곡시키고 있거나.
조지오웰의 소설 1984는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세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독재에 의한 전체주의가 어떻게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지 가감 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1984의 세계는 3개이다. 영국과 미국, 오스트레일리아와 일부 아프리카가 포함된 영어를 쓰는 나라인 오세아니아,
러시아와 유럽, 일부 아프리카가 포함된 유라시아,
중국을 중심으로 여러 아시아 국가가 포함된 동아시아.
이 세계의 나라는 서로 끊임없이 전쟁을 한다. 오세아니아와 유라시아가 동맹국이 되어 동아시아와 싸우다가 다시 오세아니아와 동아시아가 동맹국이 되어 유라시아와 싸운다.
주인공 윈스턴은 이 중에 오세아니아에서 산다. 이곳은 빅브라더 (일명 비비)의 독재를 받으며 텔레스크린을 통해 24시간 당의 감시를 받는다. 윈스턴은 이곳에서 과거를 현재에 맞게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일을 한다. 모든 중심은 지금 현재이며, 과거는 현재를 위해 존재한다고 당은 말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람들은 그것에 '기억 구멍'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파기해야 할 문서가 있을 경우, 혹은 그저 버려진 종잇조각을 발견했을 때도 거의 자동적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기억 구멍을 열고 그 속에 떨어뜨리면 그만이었다.
"정치적 제휴에 변화가 생기거나 빅 브라더가 한 예언이 틀리는 일이 생기는 경우 수없이 고쳐 썼을 가능성이 있는 상당수의 타임스가 여전히 원래의 날짜가 찍힌 채 파일에 들어가 있었으며 그것을 반박할 다른 사본은 존재하지 않았다. 서적 역시 회수되어 몇 번이고 수정된 다음 언제나 내용 변경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이 재발행되었다."
[1984, 조지 오웰]
어째서 독재자 빅브라더는 과거를 삭제하고, 수정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과거가 현재에 대한 근거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과거의 진실이 중요하다는 걸 역설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최근에 과거를 왜곡하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을 보며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를 떠올렸다. 비록 현재 우리 사회가 독재정치나 전체주의는 아니지만, 권력에 대한 아부만 일삼는 자들의 세치 혀를 보니, 크게 다르지도 않은 것 같다. 또한 이미 진실된 역사학자들의 기록에 남아있는 과거를 수정하고 삭제하려는 누군가의 손길이 섬뜩하게 느껴진다.
그들이 바라는 세상은 도대체 무엇일까?
텔레스크린을 통해 모든 국민을 24시간 감시하며, 끔찍한 고문으로 생각까지도 자신의 입맛대로 만들어 버리는 빅브라더만큼은 아닐지라도,
개개인의 신상을 열람하고, 개인적 치부를 담보하여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사고와 행동까지도 조정하는 사람들은 1984의 빅브라더 당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오해할 수는 있으나 과거는 삭제되지 말아야 하며, 왜곡되어서도 안 된다. 오해는 풀 수 있지만, 삭제되고 왜곡된 사건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방향을 바꿔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블루투스 스피커를 주문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저녁, 네 식구가 거실 소파에 모였다. 나는 블루투스 스피커와 노트북을 연결해 작은 테이블 위에 놓았다.
큰 아이가 넷플릭스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하나 골랐다. 둘째 아이는 과자와 음료수, 엄마를 위한 커피를 준비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네 가족이 발을 부딪히며 앉아 영화를 봤다. 비록 아빠는 도중에 코를 골며 잠들었지만....
아이들과 내가 기억하는 과거는 꽤 달랐다. 해외에서 아이들을 힘겹게 키웠던 나의 과거는 힘겹기만 했고, 언제나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아이들의 과거는 충만한 기쁨이었다.
기억에 대한 오해를 풀고 현재를 직시했다.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기로 했다.
우리는 매 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무비데이를 갖기로 했고, 종종 함께 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과거를 제대로 보아야 미래로 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