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나의 친애하는 자궁에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전조증상은 분명 있었다. 매일 규칙적으로 오던 전화가 뜸해졌다거나, 주말마다 찾아오던 그가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점점 찾아오는 횟수가 줄어든다거나. 나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는 그 말을 찰떡처럼 믿었지만, 반복되는 거짓말에 점점 지쳐간다.
결혼 전 몇 번의 이별을 경험했다. 내가 먼저 좋아했었던 군대 간 교회 오빠와 헤어졌었고, 몇 달 만났던
공무원과도 헤어졌다. 1년을 만났지만 더 이상의 미래가 보이지 않아 울며 헤어진 사람도 있었다. 사실은 썸만 타다 흐지부지 인연을 놓은 사람이 더 많다.
헤어지는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헤어지는 중인 연인의 모습은 고만고만하다.
매달 비슷한 시기에 규칙적으로 찾아와 존재감을 알리던, 너무 오랫동안 품고 있었기에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자궁과 이별을 앞두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조증상이 분명히 있었다. 입에 올리지 않았을 뿐, 자궁과의 이별을 나는 예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가 지금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여름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에 휴가를 왔을 뿐이고, 하필 올해 팔순이 되신 친정아버지가 위암 판정을 받아 수술과 항암치료를 앞두고 있었고
내 나이는 겨우 마흔셋이기 때문이다.
커트 머리에 금태 안경을 쓴, 나보다 어려 보이지만 안경 너머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산부인과 선생님이 날 쳐다보았다.
원래는 인기가 많은 선생님 앞으로 예약을 하려 했으나, 인기가 많은 만큼 예약도 꽉 차 있었다. 할 수 없이 내가 병원에 갈 수 있는 날 중에 진료 가능한 선생님 앞으로 예약을 잡았다. 그날이라 함은 한국에 입국한 후, 멈춰있던 건강보험이 다시 적용되고 7월에 시작한 생리가 끝난 직후였다. 생리 중에는 산부인과 진료를 보기 어렵다.
나에게 맞춘 예약날짜이다 보니 선생님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생리양이 얼마나 많나요? 하루에 생리대를 몇 개나 사용하죠?”
하루에 생리대를 몇 개 쓰는지, 다른 여자들은 모두 세고 있을까?
나는 기억하지 못했다.
“어…. 글쎄요….”
“5개 이상, 8개 이상, 10개 이상?”
주관식 문제가 객관식으로 바뀌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는 그중에 가장 적당한 8개 이상을 선택했다.
“생리 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이번 질문은 좀 쉬웠다. 마침 생리기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서 어플을 이용해 기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열세 살에 초경을 시작한 이후, 꽤 오랫동안 규칙적이던 생리기간이 마흔셋이 되자마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생리가 끝나지 않는
날이 많았고, 한 달도 안 되어 다시 생리를 시작했다. 고로, 생리가 없는 날은 한 달 중에 겨우 2주 정도.
“8일에서 9일 정도였는데 이번엔 10일 넘게 안 끝나고 있어요.”
7월 중순에 시작한 생리가 7월 말이 되도록 끝나지 않았다. 그 기간에 맞춰 진료예약을 했었는데, 그때까지도 계속 진행 중이었다.
생리인 듯 생리 아닌 출혈이 계속됐다. 가족들에게 증상을 말해도 다들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호르몬 변화가 커서 그렇다거나, 폐경이 다가와서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손가락 상처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난다거나 코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난다면 걱정할 테지만, 은밀한 곳에서 흐르는 출혈에 대해서는 다들 말을 아끼는 것 같다.
생리는 여성이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생리혈이 묻은 것도 여성이 칠칠맞아서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다. 코피를 흘리면 휴지로 닦으면 되듯 생리혈도 마찬가지이다. 생리를 시작했다면 더 면밀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즉, 생리기간과 생리주기를 잘 알고 있어야 하며 다음 달의 생리 시작일을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생리기간 : 생리 시작일부터 생리가 끝을 때까지의 기간. 보통 일주일 전후이다.
*생리주기 : 이번달 생리 시작일부터 다음 달 생리 시작일까지의 기간이며 보통 30일 전후이다.
중요한 것은 “생리 시작일”을 기억해야 하는 것인데 이 날로부터 생리주기를 계산할 뿐만 아니라 배란일과 임신주수 등도 계산하기 때문이다.
초음파를 보는 방법은 두 가지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복부 초음파와 좀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질초음파이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복부초음파를, 결혼을 했거나 좀 더 면밀히 검사해야 할 경우엔 질초음파로 확인한다. 그런데 출혈이 심할 경우엔 질초음파를 할 수 없다.
다행히도 내가 병원에 방문했을 때는 출혈량이 조금 줄어서 질초음파를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이 내 자궁의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었다.
“여기서부터 여기가 자궁이에요. 그리고 이쪽 보이시죠? 이게 전부 자궁근종이에요.”
근종이 생각보다 커서 놀랐다. 내 자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쪽 아래 보이시죠? 이것도 근종이고요. 여기에 새로운 게 하나 더 자라고 있어요.”
“아…. 네….”
“수술을 하셔야겠어요. 안 하면 출혈이 점점 더 심해질 거예요.”
“근종만 제거하나요?”
“그럴 수도 있지만, 만약 그렇게 하면 나중에 근종이 다시 생길 겁니다.”
“그럼, 자궁을 떼어내는 게 좋을까요?”
“저는 그게 더 낫다고 봐요. 가족들과 상의해 보시고 어떤 방법으로 수술하실지 알려주세요. 수술 결정을 하시면 일정을 잡도록 하죠.”
“아… 네…”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잠시 대기실 의자에 앉아있는데 왈칵 눈물이 났다. 조금 예상은 했었지만, 예상했던 게 현실이 되니 마음은 복잡했다.
친정 아버지의 위암 수술은 어쩌나….
8월 중순에 밀라노로 가는 비행기는 어쩌나….
이모집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은 어쩌나…
그렇다고 수술을 안 하고 가서 출혈이 계속되면 어쩌나…
남편과 상의를 해야 했지만, 이번만큼은 내 자궁에 대한 결정권을 내가 갖고 싶었다.
울렁이던 마음을 잠잠히 가라앉히고 간호사에게 말했다.
“가장 빨리 수술할 수 있는 날이 언제인가요? 수술하겠습니다.”
내 자궁과의 이별을 결심하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