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엄그아 이야기
우리 집엔 남의 편과 꼭 닮은 엄그아가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엄마 그냥 아들’이에요.
하는 짓이 우리 집 남의 편과 매우 흡사하지만, 나중에 한 여자의 남의 편이 아니라 남편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키우고 있어요.
아, 이젠 10대 청소년이 되어서 제가 키운다기보다는 스스로 크고 있답니다.
엄그아가 중학생이 되었다. 한국 나이로 치면 아직 6학년으로 초등학생이지만, 여기서는 중학생 취급을 받는다.
중학생이 되어 새로운 반 배정을 받은 아이는 두 번 큰 충격을 받았다. 첫 번째 충격적인 진실은 같은 반에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과목 별로 교실을 옮겨 다니고, 다른 반 아이들과 혼합되어 수업을 듣기도 하기에 같은 반의 의미가 크진 않지만, 여러 친구들 중에 단 한 명과도 같은 반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매우 실망스러워했다.
두 번째 충격적인 사실은 반에 예쁜 여자아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중학생이 되면 여자친구를 한 명 만들고 싶었다는 엄그아는 올해도 여자친구는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다나….
7살 때부터 프랑스학교에 다닌 엄그아는 매번 좋아하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엄그아가 맨 처음 좋아했던 여자아이는 귀엽고 예쁘게 생긴 ‘미라’라는 아이였다. 그 반에 여자아이는 총 10명 정도였고, 그중에 미라는 가장 인기가 좋았다. 반면 엄그아는 함께 놀자고 말도 못 붙이는 아이였다. 함께 놀지는 못해도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은 사이라고나 할까.
우리가 그 학교를 떠나기 전, 나는 엄그아와 미라를 함께 세워두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어색하게 서있지만, 활짝 웃고 있는 엄그아의 표정은 이별을 앞둔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미라 옆에서 마냥 해맑게 웃고 있는 엄그아를 보면서, 이별의 아픔을 알기엔 아직 어리구나.... 하고 생각했다.
엄그아가 두 번째로 좋아했던 여자 아이는 얼굴도 예쁘고 키도 큰 ‘티아’라는 아이였다.
티아의 아빠는 인도 사람이었고, 티아의 엄마는 프랑스 사람이었다. 유럽인과 인도인의 피가 반반씩 섞인 티아는 동양적인 매력과 유럽적인 외모를 모두 갖춘 아이였다.
좋아한다고 고백을 먼저 한 건 티아였다. 티아의 절친이 장난스럽게 전해준 쪽지에 “나 너 좋아해”라는 고백이 담겨 있었다고. 그 고백을 받은 뒤 엄친아는 티아와 급속도로 친해졌고, 급기야 밸런타인데이 때 초콜릿을 선물하기에 이르렀다. 그 둘은 결국 커플이 되어 학교 벤치에 어색하게 앉아 대화를 하거나 아이들 몰래 손을 잡았다나….
불행히도 이들의 관계는 코로나라는 변수로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고 부모에 의해 인도를 떠나게 되면서 엄친아는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티아와 헤어지게 되었다. (미안해 아들)
인도를 떠난 후에도 한동안 티아와 스카이프로 연락을 하거나 로블록스 게임을 함께 하며 채팅을 했다. 하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언젠가부터 티아는 연락을 잘하지 않았고, 엄그아 역시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래도 엄 그아의 마음속엔 "나 고백받아 봤다"는 우쭐함과 "여자친구를 사귀어 봤다"는 오만이 도사리고 있었고, 언제 어디서든 그 오만함이 튀어나오곤 했다. (남자들의 자존심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는 것...)
밀라노에서 새로운 학교에 입학한 엄친아는 여자친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 학교의 여자아이들은 죄다 별로라는 게 엄친아의 말이다.
작년엔 여자친구를 사귀지는 못했지만, 친하게 지내는 같은 반 여자아이가 있었다. 알레그라라는 이탈리아 여자아이인데, 서로 장난도 치고, 서로 욕도 하는 사이이다. 말 그대로 '여사친'인 것이다.
알레그라는 얼굴이 정말 작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내 주먹에 눈, 코, 입이 붙어있는 정도이다. 성격도 좋아서 친구들도 많다. 역시나 작년 밸런타인데이 때 같은 반 남자아이가 알레그라에게 고백을 한 모양이다. 하지만 알레그라는 그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고, 그 뒤로 둘 사이가 어색해지고 말았다고 한다.
"알레그라가 네 고백을 기다린 건 아닐까?"
"아니야! 우리는 그냥 장난치고 노는 사이야. 걔가 맨날 나한테 뻑*,라고 말하고 다니는 구만...."
"그래, 서로 뻑*를 날리는 사이에 고백을 하면 안 되지...."
“엄마, 나도 고백받고 싶어.”
얼마 전 엄그아가 내게 말했다. 나는 고백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고백을 먼저 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고백할 여자애가 없어. 다 별로거든.”
아이의 말에 나는 발끈하며 말했다.
“야, 외모가 다가 아니야. 넌 어떻게 예쁜 애들만 좋아하냐? 외모보다 성격이 더 중요한 거야. 착한 여자를 만나야지.”
“아니,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착해야지. 엄마는 외모 안 봐? 만약에 아빠가 못생겼다면 결혼했겠어? 응?”
“음….. 그래도 엄마는 외모보다 성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근데.... 아빠는 성격을 봤을까, 외모를 봤을까???”
“아빠도 아마 나랑 같을 걸. 그러니까 엄마랑 결혼했겠지….”
“그런가???"
나는 아이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중학생이 되더니 아이의 립서비스 수준이 역대급이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외모가 다가 아니다, 성격을 봐야 한다, 성격이 안 맞으면 외모가 아무리 출중해도 맨날 싸운다,...라는 잔소리를 퍼부었다.
몇 달 전 지하철에서 너무너무 잘 생긴 이탈리아 남자를 봤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남자가 내 맞은편에 서 있었다.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가장 쭘마스러운 방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바로 "힐끔거리기".
절대 내가 쳐다본다는 걸 그가 눈치채서는 안 된다. 잘생긴 남자들은 지가 잘생긴 걸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쳐다본다는 걸 그가 눈치챈다면 안 그래도 높은 콧대가 더 높아질 것이다. 그건 그 남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콧대가 너무 높아지면, 여자를 만나기 힘들고, 그러면 그 남자의 삶은 점점 지옥이 될 것이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하고 있을 때 그 잘생긴 남자가 지하철을 내렸다.
남자들도 예쁜 여자를 보면 똑같을 거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