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구멍

by 온이로

*주의*

자살, 자해에 대한 민감한 언어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손을 바라보며 동그란 구멍으로 내 상처만을 드러내는 천을 보고 있었다. 의사는 아무렇지 않게 마취를 하겠다 말했고, 마취주사가 들어가는 길목을 아파했다. 분명 밤까지는 이것보다 더한 고통이 느껴졌어야 할 것인데, 지금 저 주사 하나로 아파하는 나자신이 웃겼다. 봉합은 시시하게 끝났다. 애초에 벌어진 것이 문제지 그리 깊은 상처는 아니라고 했다. 동맥을 자르려면 어디까지 잘라야하는 걸까. 계획을 변경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미련이라는 놈이 자꾸 나에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괴롭다.


언제나 자살을 꿈꿨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원할 때 스스로를 살인하는 것이 나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삶의 목표였다. 하지만 죽는 일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었고, 나는 사람이 좋고 사회가 좋고 세상이 좋았다. 내가 살아가는 이 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고, 그 사람들에게서 항상 구원받았다. 처음으로 자살시도를 하기 전 날 유서를 썼다. 비공개로 해놓아 일기장처럼 쓰는 블로그에 그 글을 올렸다. 비밀스러운 것으로, 죽은 후에야 발견할 수 있게. 그 글에는 내가 쓰는 다른 메모 어플들도 적어두었다.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나의 현재를 알리고 싶었다. 참 유감스럼게도 내 휴대폰 비밀번호를 알고 있던 여자친구가 그것을 발견했다. 내가 자는 사이 블로그에 들어가서 글들을 읽었다는 것이다. 내 첫번째 유서는 그렇게 마지막으로 남지 못했다.


그후로도 수많은 유서를 썼다. 언제나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 그것을 이전처럼 알아채주기를 바랬다. 그가 나를 일으켜 세우고 다독여서 살아갈 힘을 주기를 바랬다. 그 사이 계속해서 시간은 지나갔다. 과거의 유서들은 마치 단편소설 마냥 길었지만 갈수록 단어는 줄어들었다. 죽음 이후에는 다가올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서서히 깨닫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마지막이라고 여겼을 때, 그저 나는 ‘무로 돌아간다.’ 는 말만 썼다. 그러고는 술을 마시고 내게 죽음의 평안을 안겨줄 그것을 마셨다. 나는 그렇게 기억을 잃었다.


이쯤되면 내가 그 마지막 시도를 실패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테다. 나는 죽음 앞에 무력했고 다시 살아났다. 4일 만에 깨어났다는 말을 들은 나는 예수를 생각했다. ‘자신을 스스로 못 박히게 하시고 죽은 뒤 사흘만에 부활하셨다’는 예수. 자신에게 독극물을 먹이고 나흘만에 부활당한 나. 예수는 그의 힘으로 되살아난 것일테지만 나는 현대의학의 힘을 빌렸고, 어찌되었던 되살아 났다. 우스우면서도 가여웠다. 원치 않는 부활이 이렇게 힘들 줄 알았노라면 애초에 시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부활은 나흘만의 일이었지만 그 후유증은 오래 남았다. 몸의 회복도 힘들지만 정신의 회복은 더욱 힘든 것이었다. 몸의 회복이 더디니 정신의 회복도 더뎠다. 나는 10분만 걸어도 체력이 바닥났고, 조금만 우울해져도 칼을 들었다. 다리는 계속 저려왔고 손목의 상처는 매일 소독해야 했다. 꿰매어진 실들이 내 살을 이어붙이는 것이 야속했고 또다시 그런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아주 빠른 미래에 자행할 지도 모르는 자해는 그리 두렵지 않다. 그리고 자살 또한 두렵지 않다.그저 부활의 기억이 나를 계속 괴롭힌다. 부활의 고통을 떠올리며 죽음을 미룬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살고자 하는 마음과 죽으려 하는 마음은 충돌한다. 살아있음으로 삶을 유지하는 것과 죽음으로 삶을 끝내는 것. 그 두가지를 천칭에 올려둔 채 저울질한다.


나는 날이 갈수록 바깥으로 나가려 하고 있다. 집 안은 점점 답답해져 갔고 나를 따라다니는 엄마의 모습이 점점 짜증이 났다. 나의 스트레스는 엄마에게 받은 것이었고, 그것을 풀 대상도 엄마였다. 곧 이사를 할 작정이다. 해결되지 않는 스트레스는 멀리 하는 게 이롭다. 해결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겠지만 그를 미워하는 나의 마음과 나를 걱정하는 그의 마음은 일치되지 못했다. 여전히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은 과거이다. 과거를 그저 지나간 것이고 현재에 집중하며 살라고들 말하지만 그것이 내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 가능한 일일까? 언젠가는 과거를 떨쳐버릴 수 있는 요령을 배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의 나로써는 그것이 언제가 될 지 알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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