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자살, 자해에 대한 민감한 언어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나는 턱에 걸려 넘어졌다. 고통을 느끼면서 힘이 없는 다리가 원망스러웠다. 순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졌다. 넘어진 채로 그 자리에 엎드렸다. 미지근한 대리석 바닥에 볼을 대고 가만히 있으니 그 온기가 나를 괴롭혔다. 옆으로 누워 보는 하늘은 또 달라 보였다. 이 다리가 제 기능을 하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1분쯤 누워 있었을까 그래도 일어나야지 하고 손을 짚어 몸을 일으켰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고통이 남아있었다. 바지를 벗고 보니 정강이에 빨갛게 까진 자국이 있었다. 멍이 들 것은 예상했지만 피를 보니 당황스러웠다. 이미 나의 종아리와 무릎은 멍으로 가득했고 언제 생긴 것인지 색으로 구별할 수 있었다. 멍은 누르지 않는 한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까진 자리는 달랐다. 조금만 스쳐도 따가웠다.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딱지가 앉기 시작할 때쯤 밴드를 뗐다. 딱지는 꼭 뜯고 싶게 생겼다. 낫지 않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다. 딱지를 떼고 나니 소행성을 맞은 듯 그 자리가 움푹 파여 있었다. 다시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밴드를 떼고 보니 벌써 살이 차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가 부은 채로 딱딱하게 변해 있었다.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감염이라도 된 것이겠지. 내가 딱지를 떼서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가끔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도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는 내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다. 그러나 정강이의 상처처럼 계속해서 딱지를 떼고 나면 그 자리는 움푹 파여 있다. 살이 차오르고 그 주위가 딱딱해지고 감염이 되고. 낫기 위해 다시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지만 그 자리는 몸의 그것처럼 쉽게 낫지 않는다. 딱지를 뜯을 때마다 고통과 함께 피가 흐르고 과거의 상처는 낫지 않는다. 딱지를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은 내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찌보면 복잡하다. 그 가려움과 통증은 일종의 쾌감으로 느껴지고, 그에 대한 기억이 그 행위를 중독적으로 만든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이것이 나의 죄로 인해 벌어진 것인가?’ 턱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보통 그 때의 부주의함 정도로만 여길 수도 있지만, 다리의 기능을 상실한 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과거를 끼워 맞춰 지금의 나를 증명하려 해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거의 두세달을 누워만 있었다. 처음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다리로 땅을 짚고 일어서지 못했다.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고작 일어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니. 무언가에 의지해야만 걸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들려지듯이 부축을 받고 링거대의 손잡이를 꽉 잡은 채로 걸었다. 다리는 항상 휘청거렸고 길바닥에 넘어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조그맣게라도 단차가 있는 곳이면 조심히 걸어야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조심을 한다고 해도 이 놈의 다리는 계속 나를 넘어지게 했다. 이제 다 나았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정말로 예전처럼 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넘어지고 있다. 처음 넘어졌을 때는 당혹스러움으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노력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러기를 포기했고 내 몸이 예전의 그것처럼 돌아오지 못할 것임을 알아 버렸다. 포기와 체념이 길어질수록 나는 방안에 누워 틀어박혔다. 움직이면 다치므로 안 움직이면 될 일이었다. 움직이면 다치므로 몸의 근력을 키워야 했다. 두 가지는 항상 마음 속에서 충돌했다. 그러나 나는 누워있는 것의 편안함에 익숙해지고 말았다.
허리의 디스크가 또 말썽이다. 찌릿한 감각이 허리에 들면 곧 디스크가 터진다는 신호다. 그럼 또 병원 신세를 지게 될테고 나아가고 있는 다리 -그렇다고 믿고 싶은- 는 다시 제 기능을 상실할 테다.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타온다. 너무나 익숙한 행위다. 병원 냄새와 주사기의 찌르는 고통, 피가 맺혀 나온 밴드, 매시간마다 챙겨먹어야 하는 약들, 고통을 잊으려 먹는 상비약, 마취를 하고 봉합한 뒤 격일로 하는 소독, 50분간의 상담, 내가 나를 베는 순간. 그것들은 나의 매일을 좀 먹고 있다.
퇴원은 아주 오래 걸렸다. 디스크가 터져 수술을 받고 병원에 두 달을 입원해있던 때가 고작 세 달 전의 일이었다. 거의 반 년을 누워 지낸 것이다. 폐쇄병동에 한 달을 더 입원했다. 분명 추위에 떨며 옥상에서 담배를 피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나와보니 이미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었다. 여름은 늦게 흘렀다. 자해와 자살시도는 꿈꿀 수도 없었다. 매일같이 어머니는 내 옆에 붙어 살았고, 조금이라도 늦거나 외박을 할 것 같은 날이면 무수한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왔다.
아직은 넘어진 일이 대리석 바닥에 누웠을 때가 마지막이다. 하지만 언제 또 그렇게 넘어질지 모를 일이고 조금만 방심하면 또 그런 결과가 나올터였다. 대리석 바닥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있다. 한 낮의 태양을 받아 뜨거웠을 것이 저녁의 선선한 공기로 식기 전의 그 온기가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올 시기이다. 지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이 지났다. 그러나 내게는 죽음을 시행할 힘조차 회복되지 않았다. 디스크로 저려오는 다리는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고 병원에서의 기억들은 꿈에 나와 나를 잠에서 깨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