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시간들

by 온이로

*주의*

자살, 자해에 대한 민감한 언어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먹으면 힘날 만한 음식. 이 말이 죽을 때까지 마음을 맴돌 것 같다.

먹으면 힘날 만한 음식. 먹으면 힘날 만한 음식.


뭘 먹지? 하는 질문에 '먹으면 힘날만한 음식'이라고 엄마는 대답했다. 내가 본가에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연례행사로 벌이던 자살시도를 했고 나는 알아달라는 듯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그다음 날 아침, 그 단순한 한마디가 내 마음을 장악했다. 먹으면 힘날 만한 음식. 엄마는 내가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엄마의 마음이 나의 고통을 위로해 주는 것으로 받아 들여졌다. 그러나 그 마음도 그때뿐이었다. 그래서 그 말이 한순간의 변덕이었으리라 믿었다.


일찍이 나를 방관하고, 평생을 일관적이지 못한 태도로 나를 대하고, 결국엔 나를 망쳐버렸다고 생각하게 만든 그. 지옥의 늪에서 내 머리를 짓밟아 버린 그. 죽음의 기로에 선 나를 살려낸 그. 나는 그가 다정함이나 모성 같은 것이 없는 사람인줄로만 알고 살았다. 나를 나로서 살아가게 하지 못 하게 하는 무관심이 있었고, 나의 힘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무심함이 있었다. 나는 그를 그저 자신의 감정대로 살아가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 유년 시절부터 그는 악인이었고, 탓할 수 있는 유일한 변명거리였다. 응급실에서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엄마와 오빠는 한참을 그곳에서 기다렸다고 했다. 나는 그 와중에 엄마가 나를 치료할 것인지 아닌지. 그러니까 죽일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고민했을 것이라 단언했다. 내가 주는 자신의 생일 선물들을 비웃었던 모습, 자그마한 말에도 윽박지르는 모습, 나의 성적이나 진로에 관해 무관심한 모습. 그런 것들은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하게 만드는 모습들이었다.


엄마는 나를 살려낸 순간부터 과거로 회귀하며 자신의 모습을 알았을 것이다. 딸이 가진 상처는 이미 벌어질 데로 벌어져 있었고, 자신이 그 원인이라고 자책하였을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뒤 면회를 온 그는 낯설었다. 그는 나에게 다정다감했고 나의 일이라면 무조건 신경 썼다. 잡으려는 손을 피하는 내 모습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가 닿지 않음을 알았을 때, 그는 눈물을 삼키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살아만 있으면 좋겠다.' 고. 그 말을 뒤집어쓴 나는 살아있어 볼 생각을 했다. 그가 살아만 있으면 된다는 말은 그 말을 감당할 수 있으니 했을 말이었으므로, 그렇게 믿었다.


퇴원을 하고 한참이 지난 후 나는 그에게 이런 저런 옛날 얘기들을 했다. '내가 혼자서도, 알아서 잘 자라는 아이인 줄 알았어?','내가 학원에서 무슨 일을 당하는 지 알았어?','내가 어떤 마음으로 엄마에게서 도망친 줄 알아?'.엄마는 평소와 같이 힘없는 목소리로 그것들에 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위로가 되지도 앙금이 풀리지도 않았다. 그저 유년시절의 내가 불쌍해졌고 그가 인정하는 것들이 다 나를 괴롭히던 것이었다는 확신을 다시하게 만들었다.


나는 사람들을 매우 좋아한다.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이해하려고 애쓰고 그에게 맞추려 노력한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 장점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엄마와 살아가며 터득할 수 밖에 없었던 생존을 위한 발악이었다. 엄마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으면 엄마의 태도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종종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어릴 때의 내가 '삶을 견디기 위헤' 삶의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지금의 내가 버틸 수있는 에너지가 없는 것 같다고.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집에서 버티기 위해, 학원에서 버티기 위해 나는 내삶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고, 자유인 줄 알았던 나날들이 방전된 상태의 기계처럼 그저 쓰러져 있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조금씩 인정하고 있다. 그는 악인이 아니고 나를 괴롭힌 것도 아니고 그저 그의 원래의 모습대로 살았을 뿐이라고, 자신이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흉내 내는 것조차 힘든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나의 기대와 그의 사랑함은 방식이 달랐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엄마도 나의 아픔과 자신에 대한 미움을 인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를 잃을 뻔한 사건 이후로 그가 바뀌자며 노력하고 있음도 안다. 여전히 그를 미워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족이라는 명목하에, 그리고 그가 노력하고 있다는 명목하에 버텨 나가고 있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33년이라는 시간이 있다. 그 긴 시간 동안 아이에서, 소녀에서, 여자에서, 어머니가 되는 일은 나의 생각보다 더 힘들고 복잡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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