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자살, 자해에 대한 민감한 언어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가위와 칼과 손톱깎이와 온갖 날이란 것이 달려있는 물건이란 것들은 다 버렸습니다. 남들에게 칼 가위를 빌리고 손톱 다듬는 일이 귀찮아질지언정 그것들이 나를 언제나 쳐다보고 있는 것을 견디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술을 마셨을 때는 괜찮습니다. 평소에. 그냥 그런 하루에. 그것들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곤 합니다. 그 소리는 마치 자신들의 모습처럼 날카로워서 아무리 지나치고 싶어도 결국은 의자에 앉아 소리의 주인을 찾아 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쓰레기 봉지에 하필 커피 남은 물이 고여있어서 내다 버린 길을 따라 커피가 흘러있었습니다. 그것들은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존재감을 내 코밑에 들이밀고 냄새를 맡게 했던 것입니다. 커피를 닦으면서, 약간 상한내가 나는 커피를 닦으면서 승리감과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슬픔과 고통도 받았습니다. 나는 결국 다시 그것들을 사들일 것입니다. 곧일겁니다. 곧이에요.
중학교에 생애 처음 자해 시도를 했다. 커터칼을 들었다. 칼등으로 팔목을 그었다. 아팠다. 하지만 상처조차 나지 않았다. 무서웠다. 죽고 싶은 마음보다 두려움이 성큼 다가왔다. 무서웠다. 아팠다. 두려웠다. 어머니는 학원을 그만두지 못하게 했다. 그때의 어머니는 나의 상황도, 나의 마음도 몰랐던 것 같다. 나는 대학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자유를 등에 업고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자기파괴적인 행동들을 벌이고 다녔다. 술을 마시고 취하고 사람을 때리고 폭식을 하고 먹은 것을 토해내고 처음 본 남자와 자고. 마구잡이로 살았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런 것들이 일종의 자해 였음을 후에야 알게되었다.
자해 충동이 들었다. 몇년 만인지 모르겠다. 입원 중에 환자들이 자해를 일으킨 사건이 많았고 나는 그것에 동조되었다. 충동의 시작이었다. 자해라는 것이 내게 좋은 영향을 줄리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자살시도를 하는 중에도 자해를 목적으로 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자해하고 피를 뚝뚝 흘리며 간호사에게 끌려가는 모습은 몇 번이고 이어졌고, '그러는 수 밖에는 없었다' 고 그들은 표현했다. 폐쇄병동 안에서는 모든 위험한 물건은 검열되었기에 나는 아무런 행동을 취할 수 없었지만 퇴원 후에는 달랐다. 칼과 가위, 눈썹칼, 족집게, 식칼, 볼펜까지. 자해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물건이 너무나 많았다. 첫번째 자해 후에는 방 안에 있는 모든 칼, 가위를 가족에게 반납했고, 두번째 자해후에는 눈썹가위와 눈썹칼을 반납했다. 자해할 수 있는 도구가 사라지자 폭식을 하고 토하기를 반복했다. 가족들은 내 자해가 이어질 수록 내 방에서 같이 자거나 내 자는 모습을 확인하고 돌아가는 날이 일상이 되었다.
자해는 일종의 살아있는 상태에 대한 증거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신경이 살아있는 것을 증명하고 피가 난다는 것은 피가 흐른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람은 동시에 한 가지 고통만을 느끼지 못한다. 자해는 마음의 고통을 몸의 고통으로 지우려는 발악이다. 날카로움으로 내 살갗을 뚫고 나서야 사그라지는 정염과, 피가 흐르는 감각이 느껴질 때 찾아오는 무감각과 안도감은 자해를 중독적인 것으로 만든다. 과도한 흥분이나 우울 상태일 때 먹으라 처방해주는 비상약이 있었지만 그런 때에는 약이 생각나지 않는다. 혹은 그것들을 그저 바라보며 거부한다. 거부한다는 것은 이 상태를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담배나 술, 커피처럼 자해는 중독되어 게속 시행된다. 내 경우 경조증의 상태일 때 감정이 증폭되고 그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다. 불안과 흥분이 증폭되고 사실 그런 상태일 때는 약을 아무리 먹어도 그것들이 가라앉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통 입원 했을 때에 보던 자해의 흉터들은 십대의 아이들에게 있었고, 나는 성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과거의 나는 자해의 고통이 무섭기도 했지만 자해의 흉터가 남들에게 받을 시선이 더 무서웠던 것 같다. 내가 본 자해를 하는 십대들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자해의 흉터를 자랑처럼 떠들어 댔고 자신의 고통이 이만큼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사회로 나가면서 자해의 흉터는 가려야 될 것이 되어 가고, 고통을 해소할 다른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그래서 성인기의 자해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사건' 이후에 모든 억눌린 감정들을 한꺼번에 처리해야 했다. 병원에서의 피가 생각났고 그들의 눈물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돈이 들지 않으며, 시간적 제약이 없는,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고 나만이 힘든 최적의 방식이 자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들의 자해처럼 나의 자해도 내 주변의 사람들을 흔들어 댔고 결국 그들 마저도 아프게 했다.
나의 자해는 폭발하는 감정을 모두 털어내는 것과 자살에 성공하는 것, 둘 중 하나가 이루어져야 끝날 것 같다. 상처는 부끄럽지 않았다. 남들의 시선은 휘발성이라서 상관없는 것들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상처의 정체를 납득시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하필 여름이었고, 하필 나는 더위를 많이 탔다. 반 팔을 입고 그들을 만날 때면 속으로 그들이 떠난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고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그 두려움을 무릎쓰고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래야만 나는 그의 앞에서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다른 지인을 만날 때면 꼭 긴팔을 입었다. 상처는 부끄러운 것이 되었고 내가 정상적이지 않은, 병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숨기고 싶었다.
자해충동과 자살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재의 나는 지속되는 조울에 갇혀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루는 자해를 했다가 하루는 글을 쓰며 새 삶을 다짐 했다가 하루는 자살을 시행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하루는 책을 읽으며 위안을 얻는다. 사람들에게서 힘을 얻고 사람들에게서 상처 입는다. 모든 이중적인 하루들은 나를 즐겁게도, 힘들게도 한다. 흔들리는 배 안에 타고 있는 느낌이다. 파도조차 치지 않는 고요한 시기가 있는가 하면 폭풍우를 만나 꼭 배가 뒤집힐 것만 같은 두려움에 떨 때도 있다.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의문은 자꾸 수면 위로 떠오르지만 나는 애써 그것을 무시하고 현재의 삶을 살아간다. 어찌되었든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 존재하는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확신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