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에 대한 보고

by 온이로

*주의*

자살, 자해에 대한 민감한 언어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나는 투쟁한다. 나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과거의 세계를 깨기 위해. 진정한 자아를 가진 나로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나는 진리에 다가가기 위한 첫 공격을 시도한다.



데미안 중 - 헤르만 헤세 작

"Der Vogel kämpft sich aus dem Ei. Das Ei ist die Welt.

Wer geboren werden will, muss eine Welt zerstören.

Der Vogel fliegt zu Gott. Der Gott heißt Abraxas."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삶을 살기 위한 투쟁을 하겠노라 타투를 했었다. 한동안 투쟁의 의미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며, 그리고 스스로 되새김질하며 그 의미를 곱씹었다. 그리고 투쟁을 지웠다. 물론 지울 수 없는 것임을 안다. '투쟁'은 붉은 것이었고 그 위를 날붙이로 빨갛게 줄을 그었다. 틀린 글자를 지우듯이 말이다. 나는 삶을 위한 투쟁을 계속하였다고 생각했다. 살아있기 위한 투쟁. 그저 인간으로서 살아있을 수 있는 최소한의 투쟁. '나'로 살아있기 위한 투쟁. 하지만 종국에는 죽음이란 놈이 이기고 말았다. 나의 투쟁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확신이 없다. 나의 투쟁이 세계를 깨트리고 신에게로 날아가기 위한 투쟁이 아닌, 살아있으려는 버둥거림이었음을 알았을 때 나의 세계는 무너졌다.


언제인지 모를 유서를 다시 읽었다.


기나긴 생을 살았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물론 나마저도. 후회하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답할 수 없게 됐습니다. 다음 생이란 게 없으면 좋겠네요. 그저 이대로 모든 게 끝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아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인데. 행복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불안이 나를 삼키고 잘게 분해해서 사라지게 합니다. 아, 나는 무엇을 바라서 이토록 힘겹게 발버둥 쳐왔나. 모르겠습니다. 살기 위해. 살고 싶어. 살아야만 해. 살고 싶지 않아. 그저 나를 누군가 죽여줬으면. 설사 그게 내가 될지라도.


이 유서 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는 그저 살고 싶었다. 가끔 그 생각을 한다. 내가 이렇게 죽음을 염원하는 것은 삶을 염원하기 때문이었다고 말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삶의 의미와 이유를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죽음을 원해서 죽는 것과 삶이 필요 없어져 죽는 것은 다른 것이다.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을 필요가 없어졌기에 죽음을 꿈꿨다. 사람들은 말한다. 살아있으니 사는 것이라고.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삶이 고작 살아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저 태어났기 때문에, 땅에 발을 내딛었기 때문에 사는 것이라면 나에게 삶이란 필요 없는 것이었다. 과거의 나는 매일 어떻게든 더 나은 내일 바라고 '이것만, 이번만, 이때까지만' 하면서 삶의 고통을 버텨왔다.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 내 삶을 의미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을 하지 않는다. 고통을 감내하며 고대하던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 무엇도 이루어진 적 없던 현실에 몇 번이고 당해왔다. 나의 미래에 더이상 희망은 없었고, 버틸 수 있는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죽음을 원하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녀석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고통이 끝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고민하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죽음과 더 고통스러운 삶 사이에서. 나에게 고통이 아닌 것은 없다. 그래서 살아감으로 인해 벌어지는, 벌어질 모든 고통을 끝낼 그 죽음의 순간에 당도할 안락함을 원하게 될 뿐인 것이다. 자해의 충동이 든다. 자살의 충동이 든다. 지금의 나는 은신 중이다. 그 누구도 나의 계획을 알지 못하도록. 약간의 연기도 해야 된다. 능청맞게 내가 왜 그러겠냐며 웃음 지어야 한다. 빨간색은 내게 죽음의 색이다. 살갗을 뚫을 무엇과 흐르는 피와 그런 것들. 자살을 계획한다. 도구를 정한다. 장소를 고른다. 결전의 날을 위해 은신한다.


끝까지 투쟁하였지만 알을 깨지 못한 나여, 날아오르지도 피어오르지도 못한 나여. 이제 그만 잠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