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소리

by 온이로

*주의*

자살, 자해에 대한 민감한 언어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응급실에서 나를 기다리던 의사는 단지 폭풍이 나를 지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남들보다 크고 길게 지속되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매서운 바람에 나는 고통만을 느낀다.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이 나타내는 폭풍의 소리. 나는 그 소리에 귀를 틀어막고 싶지만 두 팔은 잘려 있다. 땅 속을 비집고 들어가려 해도 두 다리는 잘려 있다. 희망은 없다. 나아갈 곳도 없다. 집도, 우산도, 그 작은 잎사귀 하나마저 나에겐 없다. 하지만 돌아선 길에는 내가 지나온 폭풍이 존재했고, 지금의 폭풍이 나를 지나가고 있으며, 나아갈 길에도 폭풍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이 폭풍이 나를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라는 말이 왜인지 위안이 된다. 이제는 버티는 수 밖에는 없다.


끔찍한 꿈을 꾼다. 수술실의 차가운 베드에 갇혀 움직이지 못한다. 아주 깊게 얼어있는 그것들 사이에 둘러쌓인 양 몸은 차가움 만을 느낀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한다. 그들은 꼭 의료진처럼 보이지만 나를 가지고 실험을 하는 사람들 인 듯하다. 절개했다가 봉합하고, 죽음까지 몰아갔다가 되살린다. 나를 가지고 죽어있는 사람을 되살리는 법을 학생들끼리 연습한다. 하나의 실험체가 되어 그렇게 내 몸은 그들의 놀잇감이 된다. 나는 제발 그냥 죽이라고 외친다. 빨리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죽여 달라고. 그들은 죽어가는 나를 계속해서 살려 실험을 한다. 내가 버둥거릴 때마다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치고 왜 당신을 죽이겠냐는 다정한 말 뒤로 비웃음 소리가 들린다.


죽여달라는 외침을 내지르다 깨어난 곳은 내게 낯선 곳이었다. 낯선 간호사 한 명이 '호흡기를 떼시니까 훨씬 좋아보이시네요.' 하고 말했다. 나는 그저 멍하니 그를 바라봤고 그는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목에 맞는 주사도 있어요. 신기하죠?' 라는 말을 하면서 목에 붙어있었을 밴드를 떼어내고 다시 붙인다. 무슨 과정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낯선 침대와 낯선 사람들. 그리고 가장 낯선 나 자신. 의식이 무너진 내 모습은 내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손이 묶인 채로 간호사들이 먹여주는 밥을 먹었고, 소변줄을 꽂고 기저귀에 대변을 봤다. 수치스러웠다. 인간으로서의 자유의지를 빼앗긴 모양새였다. 내 기저귀를 갈아주던 몇 명의 간호사들은 냄새의 근원을 혐오하였고 내가 그저 그들에게 불편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모든 정보들을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했다. 사람들의 말과 의료기기들이 다른 것들로 보였고 이것이 틀린 사실이라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들이 환청과 환시로 느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계속되는 망상 속에는 나를 살린 엄마에 대한 미움도 같이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성공했었다. 죽음의 앞에 다가서서 무의 존재가 된 나를 여러 사람이 건져 올렸다. 무의식의 나조차도. 했었다는 표현은 내가 이 세계에 버젓이 살아있음을 나타낸다. 죽음의 앞에 서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단지 다시 살아있음으로 돌아오는 것이 조금 더 쉬웠을 뿐. '사건'이라고 불리는 나의 자살시도는 시도로 끝나버렸다.


정신을 차린 것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인공 호흡기를 단 사람들과 예전에 내가 꾸었던 꿈을 되새김질했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언젠가 간호사에게 물었다. 인공호흡기를 떼면 죽는 것이냐 하고. '그렇죠? 아무래도'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도 인공호흡기를 떼면 죽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나요?' 그말에 그랬을 것이라고 답했다. 인곤호흡기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현실로 돌아와서도 꿈 속을 방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예전의 나의 모습이 저랬으리라.


그곳을 나와서도. 지금 이곳에 있으면서도. 죽음을 기도한다. 여전히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이 드리우는 나의 침실에는 살아있음을 증명할 필요도, 사랑을 기대할 필요도 없다. 어떻게든 다시 죽을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당연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공포가 생겼다. 다시 살아날 것만 같은 두려움. 또다시 그 천장을 쳐다볼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과 수치심은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다시 이 병실에 들어와 끔찍한 의료진들에게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며 회복하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리고 삶에 대한 미련이 생겼다. 사소한 것들이 거품이 되었다 사라졌다. 사랑을 하고 싶다는, 글을 계속 쓰고 싶다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나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나는 지금도 괴로움과 외로움과 두려움에 갇혀있으면서 사소한 것들에 집착한다. 내가 무엇을 바라는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의 내 머리는 그저 최소한의 기능만 하는 것 같다. 동물로써 살아있음을 유지하려는 행위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온통 뇌로 받아 들일 수 없는 현실만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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