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그런 존재 하나씩 있지 않나요? 항상 마음에 품고 있는 그런 존재. 늘 가슴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그런 존재. 함께할 때나 떨어져 있을 때나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존재. 저에겐 가족과 친구, 동료가 그런 존재입니다. 이들은 제 삶의 원동력이자 강인한 의지를 발휘하게 만드는 대상입니다.
아무래도 아빠라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 이후론 특히 딸이 그런 존재입니다. 이번 주부터 딸이 어린이집에 가게 되어 함께 하던 시간에서 약간의 공백이 생겼는데 항상 눈앞에 있던 존재가 없으니 불안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공백이 주는 장점도 있더군요.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여유가 생기니 가만히 쉴 수 있는 재충전의 기회가 되는 동시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좋아하는 것들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죠. 그렇게 잊고 지내던 소중한 존재들을 다시 한번 느끼고 나니 또 다른 삶의 의미를 찾은 시간이 되네요.
이러한 공백이 주는 장점은 일에서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 설과 삼일절 연휴 덕분에 일로부터 잠시 떨어져 있는 공백의 시간을 보냈죠. 저는 일을 안 하고 있을 때보다 하고 있을 때 일을 더욱 열정적으로 대하는 사람이였습니다. 주말이나 연휴 끝자락엔 일로 복귀하는 게 웬지 모르게 싫지만 막상 일을 하고 있을 때는 굉장히 즐겁고 보람차기 때문이죠.
내가 구상한 대로 일이 돌아가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느껴지는 희열 덕분에 단순한 유희보다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게 더욱 고차원적인 기쁨이라는 의미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또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벌리고 이룬 것들이기에 더 유의미한 것 같습니다. 저를 믿고 맡겨주는 부모님들, 믿고 따라주는 학생들, 시킨 일을 성실히 수행해 내는 직원들 등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연휴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존재들이 즐거움만을 주는 것은 아닐 겁니다. 때론 그 무엇보다도 아픈 시련, 절망, 두려움의 근원이 되곤 하죠. 그렇지만 이 존재들의 순수한 내면과 순전한 의도는 분명 나와 같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의도치 않게 잘못 표현되어 현상에 드러날 뿐이니 겉에 드러난 것만으로 존재들을 판단하지 않아야 할 테죠. 이러한 판단을 가능케 하는 힘은 마음의 여유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에서 적절한 공백은 더욱 가치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그런 존재는 서로가 서로에게 같은 존재라는 점에서. 몸은 떨어져 있더라도 항상 마음 한가운데 자리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몸만 함께 하고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는 존재와는 다르다는 점에서. 어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굳건한 의지를 발휘하게 해주는 그런 존재라는 점에서. 언제나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게 지탱해 준 그런 존재가 꼭 있다는 것이야말로 사랑이란 개념을 이해하고 동시에 그 존재들 사이의 여백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움스러운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