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필연인가 우연인가.

by 박태윤


내가 맺은, 맺었던, 맺을 무수한 관계들. 돌아보면 단 하나라도 내가 의도한 대로 됐던 게 있을까. 애당초 그 관계의 시작부터가 이미 우연의 연속이진 않았을까. 더 나아가 그 관계의 끝은 어땠는가. 정확한 계산 아래, 계획대로 관계가 시작하고 끝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여기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렇게 우리가 모여 앉아서 나름의 관계를 맺고 있는데 얼마나 희박한 확률을 뚫고 가능한 일인가. 그래서 오히려 황망하다. 이 모든 게 우연인 것만 같고 내 자발적 의지에 기인하여 통제되는 영역이 아닌 것만 같다는 점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의 마음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원하는 때에 움직여지지 않았다. 사업을 할 때도, 연애를 할 때도, 친구 관계를 맺을 때도. 그래서 인사가 만사이며 타자는 지옥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타인과의 관계, 절대 쉽지 않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관계란 참 아이러니하고 미스테리하며 통제불능, 마치 미지의 영역 같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란 게 존재할까.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기가 막힌 우연의 우연의 우연이 연속됨에 따른 필연적 인연이 있을까. 아무도 알 수 없다. 그게 필연인지, 우연이지. 하필 그때 거기서 그렇게 만나 가장 적절하게 혹은 부적절하게 맺어진 인연들의 결과물이 인간 관계이다. 여기 앉아 있는 우리 모두도 그렇게 우연인 것처럼, 또 필연인 것처럼 만났다. 그래서 신비하다. 이 시즌이 끝나고 자연스레 끊어질 인연들도 있을테니 한편으론 애석하기도 하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사람들 간의 관계의 줄을 누군가가 재미삼아 이었다가 어느 날 끊어버리는 것만 같다. 애써 붙들어 잡아봐도 긴 줄을 중간에서 가위로 끊어버리니 불가항력적이다.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가 필연이라고 한다면 현대 과학이 밝힌 DNA로부터 그 근거를 찾을 수도. 결국 비슷한 종자, 즉 유사한 특질을 공유한 개인끼리 서로 끌린다는 점에서 연인, 친구, 내가 뽑은 직원은 필연적일 수도 있다. 진화 심리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생존에 가장 유리한 배우자는 엄마와 가장 가까운 DNA를 가진 존재이니 배우자를 어느 날 만나게 된 건 우연이더라도 그 대상을 배우자로 삼게 되는 건 단순 우연은 아니었을터. 그렇지만 그러한 DNA 또한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점에서 모든 관계는 역설적으로 항상 우연성이 더 크게 작용한 결과는 아닐는지.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가 맺는 사회적 관계는 일종의 경제적 계층 간의 구조에 근간한 경우도 많지 않는가. 일명 수저론. 과연 흙수저가 금수저와 결혼할 수 있을까. DNA는 선천 요인으로 아예 선택 불가하지만 환경은 후천 요인인데도 갓난 아기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할 수 있나. 최근 타고나는 복중 최고는 부모복이라는 말을 자주 본다. 결국 관계는 기질적 요소와 환경적 요소 둘다 개인이 충분히 고려하여 선택하는 요소가 아니라는 점에서 다 우연적인 것만 같다.

누구나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왜 그 사람들과의 인연은 끝이 났을까. 사실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을테다.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사업을 하니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환경이 바뀌니 몸도 마음도 상황도 점점 서로를 갈라놓게 됐다. 그게 관계의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때가 많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그 누구의 의도가 아니라서 더 황망하다. 그냥 그런 세계에 살고 있다. 생명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더 나아가 첫 만남부터 끝 만남까지.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들은 아니다. 그래서 애석해하거나 후회할 노릇이 안 된다. 이 모든 관계의 시작과 끝이 우연인 동시에 어쩌면 운명의 장난이 맺어준 필연일텐데 그 또한 내가 좌우할 수 없으니. 노래 가사처럼 첫 만남은 너무 어렵고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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