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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화 Jan 16. 2023

뭐?
내 친구가 사이비라고? (1)

OMG[오매! 갓이시여!] 시리즈 #03


너 당장 거기 나와!




 "안돼......"

 "왜?"

 "엄마한테 혼나."



 지금 내 앞에서 속을 뒤집어 놓고 있는 이 아이는 고등학생 때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였다. 전편에서 나의 자퇴를 슬퍼하며 울었던 단짝과는 다른 의미로 각별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전편의 단짝이야말로 내 인생 유일무이한 단짝이라고 세상 천지에 당당히 선언할 수 있지만, 시간이 은근히 진실을 드러내기 전, 당시에는 이번 편의 친구야말로 내 평생의 짝꿍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토록 친절하고 현명하여 나의 온갖 신뢰와 애정을 받던 이 아이가 고백하길, 자기가 다니는 교회는 사람들 눈에 조금 이상해보이는 곳이란다. 이상해봤자 얼마나 이상하겠어, 하는 낙관이 산산이 부서지기 직전의 나는 잔뜩 골이 나있던 참이었다. 고등학생은 공부하고 남은 시간을 쪼개서 만나 놀기도 어려운 시기인데, 친구가 교회를 간다며 일요일 약속을 종종 뺐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의 친구보다 하나님이 더 중요해?" 



 나는 입을 댓 발 내밀고 말끝마다 빈정거렸다. 당시의 나는 불가지론자를 넘어서 완벽한 무신론자였다. 사주팔자나 신점이야, '우와, 신기하다!' 하며 믿거나 말거나 신나서 보러 다녔지만, 진지한 신앙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좀 달라졌다. 나 또한 우리 엄마만큼이나 다소 낭만적으로 보이는 현실주의자였다. 그게 대체 무슨 뜻이냐 하면, 종종 절 냄새를 맡고 무당을 보러 간다고 해도,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는 신이나 종교 따위 염두에도 두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나의 자퇴 소동 당시 엄마야 동아줄 잡는 심정이었을 뿐, 나의 자퇴가 무산된 후 엄마는 그 단체와 깔끔히 연을 끊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엄마는 종교나 조상신을 이용한 것이다! 나는 킬킬대며 생각했다. 그리고 나 또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는 이용 가능성이 있을 때까지만 유효한, 자기만족적인 위안이자 현실도피에 불과하다고.



 그런데 내게는 그토록 별 볼 일 없는 그런 종교, 그런 교회 따위에 나의 소중한 친구를 빼앗긴다는 사실을 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옆에서 시도 때도 없이 서운함을 토로하는 생생한 나보다 어디 있을지도 모를 신이 더 중요하다니. 그리고 내 친구도 그만큼 독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인데, 엄마의 강요가 아니면 굳이 찾아가지도 않을 교회를 꾸역꾸역 나가야 할 의무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도 황금 같은 주말에. 그래서 나는 마치 신실한 종교인을 꼬드기는 사탄처럼 친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랑 놀자, 교회가지 말고."

 "안돼...... 엄마한테 혼나."

 친구가 시무룩해져서 말했다. 나는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이건 명백히 강요였다. 

 "너 종교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몰라?"

 "왜?"

 "너희 엄마 같은 사람들 때문이야."


 

 자신의 신앙을 강요하는 사람들. 누가 그렇게 시키디? 신이 시키디? 그거 다 구라야, 구라.

 다소 모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나의 발언에도 친구는 별말이 없었다. 오히려 킬킬 웃었다. 저거 봐, 저거. 저거 진짜 신 믿지도 않으면서. 나의 발언은 왜 엄마를 운운하냐며 화를 낼 여지가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웃는 걸 보면, 사실 이 아이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다만 자신의 엄마이기 때문에 속으로 꾹꾹 참고 눌러왔었던 진심을, 다른 이가 속시원하게 내뱉어주니 화 대신 웃음이 터진 것이다. 이런 심리야말로 뭇 종교에 만연해있는 위선의 본질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종교에서 제시하는 도덕적인 인간상과 현재의 자신 사이의 간극, 그 간극이 야기하는 죄책감의 고통을 해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억압'이다. 신앙을 강요하는 엄마에 대한 불만을 죄악시하여 억압하고,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딸의 행세를 하지만, 사실 내면에는 진심과 도덕적 강요 사이에서 반복되는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 편안하지 않은 갈등에 무뎌지다 보면 어느 순간 제 진심이 무엇인지 잊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흉내 낸 선(僞善)' 다름 아니었다. 이런 위선자는 보통 일부러 위선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선하다고 굳게 믿는 행위를 깊은 숙고 없이 하다 보니 위선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순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 중에 위선자가 오히려 많았다. 



 나는 엄마에 대한 두려움과 애정, 그 복잡미묘한 감정들로 인해 자기가 원치도 않으면서 교회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 친구에게서 위선의 징조를 감지했다. 그럴 때면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었다. 드러내놓고 뭐라 하지 않아도 얼핏 악에 받친 미운 소리가 나왔다. 미운 소리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두 종류였다. 부인 상태에 들어가 되레 화를 내거나, 내가 대신 뱉어준 진심으로 묘한 해방감을 느끼며 고해성사하듯 더 깊은 진심을 털어놓는다. 나의 친구는, 우리들이 그동안 오랜 시간을 들여 맺어온 신뢰관계로 인해 후자의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조금 특이하긴 해." 

 "뭐가?"

 "일단 우리 교회는 일주일에 두 번 나가. 수요일이랑 일요일."

 "보통 일요일에만 나가잖아. 너도 수요일에는 교회 간다는 말 안 하고."

 "응, 수요일에는 엄마만 나가."

 "넌 일요일에도 잘 안 나가잖아."

 "그렇긴 해."



 우리는 킬킬 웃었다. 친구도 말하다 보니 자기가 왜 이 문제로 나와 갈등을 맺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너 골라 봐. 나야, 교회야?"

 "당연히 너지."

 "그럼 교회 나가지 마."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의 갈등이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로만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친구는 생각보다 미적지근하게 굴었다.



 "이번 주는 나가야 해."

 "그럼 나 이번 주에 뭐 하라고?"

 "공부해."

 "공부는 네가 더 해야지! 난 잘해!" 



 이번에는 나만 킬킬 웃었다. 친구의 표정이 어두웠다. 나는 너무했나 싶어 친구의 눈치를 살폈다.



 "...화났어?"

 "아니."

 "내가 너 공부 못한다고 해서 화났어?"

 "아니, 그냥. 나도 교회 가기 싫은데 너랑 이렇게 싸우고 있는 이유가 이해 안 돼서."



 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래, 나도 이해가 안 돼. 왜 이렇게 쓸 데 없는 거에 우리가 이런 시간 낭비나 하고 있을까? 그러면서 조금 반성했다. 종교에 대한 반감이야 나의 문제고, 어쩌면 친구가 내 생각보다는 강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그러면 나도 조금은 양보해야 하지 않을까? 우린 친구이므로.


 

 "그럼 나도 네 교회 따라갈까?"

 "응?" 

 "그럼 교회 끝나고 같이 놀 수 있잖아. 몇 시에 끝나는데? 교회는 아침 일찍 만나지?"

 "......"

 "뭐야, 싫어? 왜 말을 안 해."



 친구는 거절을 잘 하지 못했다. 엄마의 강요 때문에 싫은 교회를 나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친구는 나의 부탁도 잘 거절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뜸을 들이더니 이내 진실을 술술 털어놓기 시작했다. 고백의 핵심인 즉, 친구의 교회, 아니, 정확히는 친구의 어머니가 다니며 친구에게 강요하는 교회는 세간에 사이비로 알려진 교회였다. 왕성하고 공격적인 포교 활동으로 그 세력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커지고 있는. 처음에 나는 친구의 말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재차 확인해 보니 친구는 어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미쳤어? 너 거기 당장 나와!"

 "나도 그렇고 싶어."

 "나가지 마! 너 교회 나가지 마! 네 엄마는 거기서 못 나와도 너는 교회 나가지 마!"

 "그래도 엄마 힘들 때 도움 많이 받은 곳이란 말야."

 "원래 힘들 때 종교 믿는 게 제일 쉬워. 썩은 동아줄이래도 다 붙잡고 싶으니까! 그거 노리고 전도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우리 엄마 종교인데."

 "그럼 계속 나가. 대신 나 너 안 만나."

 "정화야, 왜 그러냐..."

 "너는? 너는 왜 그러냐, 진짜?"

 "내가 판단해볼게. 거기가 진짜 이상한 곳인지, 아닌지."

 "판단? 네가 판단을 해? 그럼 거기 있는 사람들은 다 멍청해서 판단 못하고 거기 안에 있는 거야?"



 우리의 논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친구와 관계를 끊을 생각은 없었다. 장황한 논쟁 끝에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 그럼 너도 판단하고, 나도 판단하자.
일요일에 같이 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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