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새끼가 그 새끼들이랑 다른 게 뭐지?'
옅게 들리는 바깥 소리와 혈압을 알리는 미밴드의 알림소리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시종일관 담담한 관찰과 나레이션으로 진행된다. 거의 킬러의 하루, 킬러의 다큐 3일. 킬러의 잔혹한 복수극이라는 말에서 조금도 어긋남이 없지만, 온도를 100도 정도 낮추면 이 영화의 온도가 될 것 같다. 섭씨로.
또 다른 차이점은 통쾌함이 없다는 점이다. 처음 시작할 때, 죽이려는 타겟은 뭐, 죽일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더라도 킬러가 복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보통 사람이 죽는다. 통쾌한 복수극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여기서 사라진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새끼가 그 새끼들이랑 다른 게 뭐지?'
이 킬러도 관려있는 타겟들과는 달리, 휘말린 죄 밖에 없는 사람들을 죽일 때에는 마음 속에 갈등이 보인다. 그럼 뭐해, 죽이는데. 마음 속에 갈등은 나도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겪는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순간에는 이 킬러도 죽길 바랬...다고 하면 너무 싸이코 같을까? 왜 너만 행복하게 끝나야 되는 건데?
한 킬러가 암살에 실패한다. 클라이언트는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킬러를 치워달라는 새로운 의뢰를 하지만, 애꿎은 아내만 다친다. 이에 킬러는 관련자들을 하나씩 찾아가서 죽인다.
킬러는 파리 한 복판 위워크에 잠복하면서 암살의 대상을 기다린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타겟에게 총을 쏘려는 순간에 타겟의 애인이 타겟을 가린다. 그래서 암살은 실패.
실패 후 집에 가니 집이 엉망이다. 침입과 싸움의 흔적. 아내가 습격당했고, 목숨만 건진 상태다. 이에 복수를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감정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복수의 첫 타겟은 킬러들을 집까지 데려다 준 택시 기사. 킬러가 어떻게 생겼는지 듣고 죽인다.
두 번째 타겟은 그동안 일을 맡긴 브로커, 브로커의 비서에게 그 킬러가 누군지 확인하고 죽인다.
세 번째 타겟은 두 명의 킬러 중 남자. 개아프게 죽인다.
네 번째 타겟은 두 명의 킬러 중 여자. 밥 먹고 죽인다.
마지막은 최종 클라이언트. 난 그저 실패한 킬러를 치우는 것에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안 죽인다.
그리고 치료가 끝난 아내와 햅삐. 라고 하기엔 뭔가 껄쩍찌근하게 연출되긴 했지만, 여튼.
영화는 차갑고, 이 차가운 영화에서 가장 차가운 건 주인공이다. 대부분의 대사가 나레이션이며, 그 나레이션마저도 킬러의 계명을 되뇌이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체에 복수의 열감이 옅게 깔려있기 때문에 너무 차갑지는 않다.
킬러의 하루를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게 새롭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긴장감의 팽팽함과 느슨함이 있을지언정, 영화 내내 늘어지는 부분은 없다. 킬러의 비행 마일리지 쌓는 폼 미쳤다. 어디선가 보니, 주인공이 수없이 사용하는 가명들이 70년 대 시트콤에서 따온 거라는 데 알고 봤으면 더 재밌었겠다 싶다.
연기 좋다. 대사가 거의 없고,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보니 감정이 벙커 안에서 폭발한다. 연민과 흥미로움을 눈빛으로 표현한다. 데이비드 핀처 영화니까, 감독 이름값 정도는 한다.
2023.11.27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