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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등고 Nov 16. 2018

2. 레디메이드 인생

세상의 바보들에게 화내면서 웃는 방법

“뭐, 어디 빈자리가 있어야지.”

K 대표는 소파에 푹 파묻힌 몸을 뒤로 벌떡 젖히며 하품을 하듯이 시원찮게 대답을 한다. 보아하니 그는 두 팔을 쭉 뻗고 기지개라도 한 번 하고 싶은 것을 겨우 참는 것 같은 눈치다.

이 K 대표와 둥근 탁자를 사이에 두고 공손히 마주 앉아 얼굴에는 ‘나는 선배인 대표님을 극히 존경하고 앙모합니다.’하는 비굴한 미소와 함께 있는 말빨 없는 말빨 다 동원하여 직업 동냥의 구걸 문구를 길게 늘어놓는 P. P는 그러나 이력서만 100장은 족히 쓴, 자기소개서의 달인인지라 K 대표의 힘 들이지 않은 한 마디 거절에도 새삼스레 실망도 안 한다. 대답이 그렇게 나왔으니 이제 더 졸라도 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괜히 한 마디 더 해보는 것이다.

“아… 그러시면 지금 당장 어떻게 해달라는 말씀은 아니고, 나중에 결원이 있든지 하면 그 때라도 연락을 주시면…”

이렇게 말하고 P는 지금까지 외면하였던 얼굴을 돌리고 K 대표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K 대표는 우선 고개를 좌우로 두어 번 젓고는 여전히 하품 섞인 대답을 한다.

“결원이 그리 나나. 그리고 어쩌다가 빈자리가 생겨도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많아서…”

P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영영 틀린 것이다.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일어서는 것 밖에는 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바로 일어나면 지금까지의 선배를 대한 태도에 비하여 너무 구직하러 온 것 같으니 실망이나 하는 척하면서 잠시 더 앉아 있었다.

“거, 참 큰일이야.”

K 대표는 P가 낙심하는 것을 보고 별로 밑천 들지 않는 걱정을 알뜰히 나누어준다.

“이렇게 훌륭한 친구들이 일거리가 없으니…”

P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으나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K 대표는 P가 더 이상 조르지 않을 것이라 안심하고 먼저 하품을 섞어 ‘빈자리가 있어야지’하던 시원찮은 태도는 버리고 그가 늘 생각하다가 청년을 만날 자리가 되면 으레 꺼내곤 하는 훈화를 시작한다.

“그렇지만 내가 늘 말하는 것인데… 저렇게 취직만 하려고 애를 쓸 게 아니야. 꼭 서울에서 월급생활만 하고, 좋은 기업만 찾으려니…”

“그럼 취직 말고 뭘 할까요?”

P는 말 허리를 자르고 불쑥 끼어들었다. 그는 기왕 취직은 글렀으니 속 시원하게 말이나 해보고 싶었다.

“허! 다 모르는 소리! 이제는 4차 산업 혁명이 온다고 하지 않나? 이제는 아이디어 싸움이라고. 모두가 똑같은 길을 가려고 하니. 아 지금 우리나라에 할 일이 얼마나 많다고?”

“저는 그 말씀을 잘 못 알아듣겠는데요. 저희 같은 사람이 창업을 해서 할 일이 뭐가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 응? 이를테면…”

K 대표는 말을 더듬다 결국 끝내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그가 구직하러 오는 학교 후배들이나 아는 사람의 자식들에게 창업을 하라는 조언은 현실에서 출발한 이론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대학 나온 실업자들이 넘치는 것을 보고 막연하게 ‘창업을 해라’. ‘젊으니까 괜찮다.”같은 말을 주워섬길 뿐이었다. 따라서 거기에 구체적인 플랜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인생을 더 산 어른의 조언으로, 또 한편으로는 취업 자리를 부탁하는 이들을 물리기 위한 수단으로 자룡이 헌 창 쓰듯 썼을 뿐이다.

그리하여 그동안은 그 막연한 설교를 들은 체하고 물러가는 것이 그들의 모습이었는데, 오늘 이 P가 반문을 하니 불가불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어야 하니 말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떠듬떠듬 생각하며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것이다.

“가령 응……. 저……. 푸드트럭이 있지. 왜 요새 TV 보면 자주 나오고 돈도 잘 벌지 않는가.”

“푸드트럭이요?”

“그렇지… 제대로 하면 얼마나 좋겠나.”

“저 신방과입니다. 요리라곤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데 그런 기술이라도 있으면 이렇게 취직을 못 해서 애를 쓰겠습니까?”

“하! 그게 잘못된 생각이야. 모험정신이 없어! 언제나 안정적인 직장만 생각하니. 위험하다는 핑계로 직장이 없다는 이유로 번들번들 논다는 것은 타락한 생각이라고. 젊으면 모험을 해봐야지!”

“P는 K 대표가 억담을 내세우는 것을 보고 속으로 싱그레 웃었다.

“그렇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창업입네 뭐네 하고 아파 봐야 청춘이네, 흔들려야 꽃이 피네 하며, 왜 우리나라는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없느냐, 차고 프로젝트를 해야겠다는 소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희가 창업을 못하는 것은 차고가 없어서가 아닌데도요. 그리고 한국의 모든 청년 실업자가 사업가가 되어집니까?”

“되면 되지 안 될 건 뭐야?”

“그건 창업이라는 것이 이 나라에서 너무 위험한 거니 그렇지요.”

“허허, 그럼 P군은 무사안일주의자인가?”

“제가 무사안일하고 싶어도 못하죠. 지금 이대로 머물러 있으면 이자만 늘어나는 빚쟁이가 될 텐데요. 그것도 현재가 살 만한 사람들이나 가능한 이야기이죠.”

“못써! 그렇게 패기가 없어서 되나. 정 창업하기가 싫거든 작은 소기업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떤가. 중소기업은 맨날 인력난에 시달린다고 난리이던데. 나도 얼마 전까지는 사람 구하는데 얼마나 애를 먹었다고. 그러면 얼마 안 되는 기업들에게만 매달릴 필요 없지 않겠나?”

“그런 기업들 월급은 제대로 쳐준답니까?”

“그거야 기업이 성장하면 월급도 같이 오르는 거지.”

P는 엉터리없는 수작을 더 하기가 싫어 웬만큼 말을 끊고 일어섰다.

속에 있는 말을 어느 정도까지 해준 것이 시원은 하나 또 취직이 글렀구나 생각하니 입 안에서 쓴 침이 괴어 나온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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