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크리드 어벤투스와 팔꿈치 이야기
"저는 성이 한 씨가 좋더라고요"
홍콩의 습기도 은수의 설렘을 눅눅하게 만들진 못했다. 그의 걷어올린 하얀 셔츠, 그리고 문득문득 보이는 하얀 팔꿈치를 보며 은수는 정리 안된 팔뚝의 팔 털이 묘하게 신경 쓰였다. 그건, 그가 함께 우산을, 굳이 하나를 '같이' 쓰자고 하는 제안 때문이었다. 별안간 설렌 적 없었던 은수는 선뜻 그의 우산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성을 말했다. 제 이름은 "한정현"입니다. 순간적으로 은수는 그에게 말했다. "어, 저 한 씨 좋아하는데", 그는 "그래요? 특이하네요"라고 웃어 보였다. 그들은 아주 빠-알간 장식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딤섬집으로 향했다. 그는 컵에 자신의 찻물을 따르다,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한 공사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새우 한 접시를 먹던 둘, 이야기 도중 남자는 대학교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그것은 그녀가 취업준비생이기에 나온 이야기였다. 무얼 하고 싶냐, 어떤 일을 하고 싶냐에 이어 그는 어느 대학교를 다니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봤다. 그녀는 남자의 물음에 대답했고, 그렇게 둘은 음식점을 나와 홍콩의 거리 곳곳을 걸었다.
그녀는 처음 홍콩에 발을 디딘 그를 위해, 미리 알아본 홍콩의 곳곳을 소개했다. 구룡공원, 빅토리아 피크, 침사추이, 완탕면, 지니 베이커리. 그녀는 마치 그를 위해 홍콩을 '먼저 온 듯', 그에게 체할 정도로 관광지를 꾸역꾸역 소개했다. 그럼, 그는 모든 것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어댔고, 그런 그를 보는 그녀는 뿌듯해했다.
저녁이 다가오고, 그녀는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기에 그와의 이별을 준비했다. 야경을 보고, 거리에 앉은 둘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시위 때문에 센트럴로 가는 것을 꺼려하여, 3년 전에 왔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가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러자 그는, 지금 당장 가보는 게 어떻겠냐며 웃어 보였다. 침사추이에서 센트럴로 넘어가려면 배를 타야 했는데, 저녁 9시가 다되어가는 순간 같이 배를 타고 그곳을 가자고 말했다.
그녀는 청킹맨션은 보았으면서, 엘리베이터를 못 타본 것이 후회되었지만 모험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외국 여행이 주는 한국인 둘만의 설렘, 그리고 배를 타고 즉흥적으로 떠나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그렇게 '중경삼림'의 밤을 그와 함께 느꼈다. 소호의 거리를 걷고, 쇼핑센터도 가보며, 란과이펑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길거리에서 키스하는 연인들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내가 생각만 하는 걸, 현실로 옮겨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런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들은 맥주를 샀고, 길거리에서 마시다가 건물 주인에게 쫓겨났으며, 지하철에서 헤어지기 싫어 한동안을 맴돌았다. 그녀는 뒤꿈치가 없는 신발을 신어 따라가기 힘들었지만, 아프다는 말은 않았다. 발톱에 피가 고였지만, 그를 따라다니며 홍콩의 습기를 즐겼다. 그리고 이 것은 그들의 연애의 큰 복선이 된다.
지하철에서 맴돌던 그들은 결국 같은 방향으로 향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땀에 젖은 팔꿈치를 부딪히며 걸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어벤투스 향기를 맡으며 한 여름밤의 열기와 함께 사랑을 녹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