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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Jun 23. 2019

싫어하는 것과 관심이 없는 것

난 당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단지 관심이 없을 뿐이야.

"언니, 그 언니가 언니가 자기 싫어하냐고 물어보던데?" 손가락으로 졸업 날짜만 세고 있던, 어느 뜨거운 오후. 친한 후배와 함께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 뜬금없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응? 내가?" "응, 언니가 인사도 잘 안해주고 (주절.. 주절)" "아니, 내가 싫어할 이유가 없는데 뭐, 아니라고 전해주라." "그래, 알겠어" 내가 직접 말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친하지 않은 누군가와 이런 주제의 이야기를 터놓고 얘기하기까진 많은 생각과 주저함을 요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만두었다. 지친 일은, 알아서 피하고 싶다.


고등학교 시절, 난 내 외모와 분위기가 남들이 봤을 때 어려워 보인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늘 친구들로부터, 너 처음 봤을 때 무서웠어 따위의 말을 들었다. 당시 나는 내 노란 염색머리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소심하고 생각이 많아,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기도 물러서기도 힘든 게 난데. 그래서 먼저 연락도, 말도 걸지 않으면서 살아온 난데. 그래서 누군가가 먼저 다가오고, 알아주기 전엔 날 꺼내지 않는 게 난데. 그게 난데 지금까지도.


그 언니가 그렇게 생각한 데에는, 많은 상황들이 쌓여 만들어진 오해라고 말하고 싶다. 일단 나의 위치. 화석도 암모나이트를 초월한 내 고학번의 꼬리표를 달고선, 학교 사람들 누구에게나 쉽게 관계를 맺을 수 없다. 후배들의 인사가 불편해 매번 그들을 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란 사람. 난, 누구와 술자리를 갖고 떠드는 것보다 집에서 책과 영화를 보며 혼자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걸 선호한다. 학교 가기 전엔 아침 사우나에 가 멍 때리며 글 쓰고 사는 미래를 그리고,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달려가 히치콕의 영화를 본다. 지금의 시점에서, 학교의 누구와도 엮이기 싫은 나는 다가오지 않으면 먼저 다가서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냥 지나가는 것을 무시라고 생각했다면, 인사하지 않는 것을 당신을 싫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마음이 아프지만, 내 잘못이다. 난 단지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싫어하는 건, 좋아하는 것만큼의 에너지를 쏟아야 하지만 난 요즘 누군가를 싫어할 만한 양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


대학생활을 하며, 누군가를 싫어해본 적은 딱 한 번 뿐이었다. 나를 한 마디로, 내 앞에서 날 다 아는 듯이 규정하는 듯한 그 한 마디에 쌓아온 정이 다 떨어졌다. 내 인생을 대신 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당신이 나보다 날 더 잘 아는가 분노했다. 그리고 난 다시 '규정'했다. 그 사람을 '싫어하기로'.


싫어하는 데는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했다. 일단, 나와 친한 친구들에게 그 사람이 별로라는 말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했던 말과 행동을 내 입으로 전해야 했다. 친구들의 동조와 공감을 받아내야 했다. 그리고 몇 년간 그 사람을 싫어한다고 되뇌면서, 그 사람들과 친한 사람들을 걸러냈고 연락을 무시해야 했다. 어떤 자리에 그 사람 이야기만 나와도 피해버렸고, 혹시나 내 소셜 미디어 계정을 알아낼까 비공개로 돌려야 했다. 그게 내가 사람을 싫어하는 방식이었고, 그것들은 꽤나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이제야, 나는 사람을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것의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쏟은 에너지는 내 인생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하였다. 친구들과 남의 뒷말을 나눈 시간들은, 그 시간에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로 뒤범벅되었다.


사람을 싫어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가는 길은 손톱을 물어뜯을 만큼, 불안한 일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누군가도 나에 대해 이렇게 뒷말을 나누겠지. 난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겠지만. 내가 말하고, 행한 것들은 모두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난 누군가를 싫어하지 않으려 한다.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현재까진.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을 뿐이다. 무릇 사람이 부대끼고 사는 사회에서, 누군가와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이런 내 성격과 행동들이 곧, 마이너스가 될 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우선 내 에너지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적인 영역에 두기 보단 내 안에, 내 안 깊숙이 두고 싶은 마음뿐이다. 남에게 쏟지 않으려 한다. 난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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