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일기] 생각하다 걷다 쓰다

by 김삶
환기하러 회사 옥상에 올라갔다. 신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성스러운 공간이 머리 위에 있었다. 속세에서 틈틈이 성소를 생각한다. 생각을 의식하며 걷는다. 걷고 나니 쓰는 이가 된다.

일어나서 주변을 정리하고 물을 끓였다. 부엌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사골국이 녹으며 물이 샜나 보다. 산책하러 나갈까 고민하다가 집에서 일기를 쓰기로 결심한다. 아침일기다. 줄리아 카메론이 말한 모닝페이지다. 전화외국어를 하기 전까지 30분 정도 나의 내밀한 생각을 글로 털어놓는다. 떠오르는 상념을 빈 페이지에 옮긴다. 시작은 나에 대한 질문이다. 어제 출근하면서 내가 만 41.25세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국 실리콘밸리 근무를 마치고 올 때가 만 40세였다. 그로부터 1과 1/3년이 지났다. 적어도 한국 근무를 2.5년이라고 볼 때 절반이 지난 것이다. 많은 일이 있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하나씩 하나씩 해결했고 나는 지금 여기에 서있다. 모든 것이 제자리다.


글쓰기를 수행으로 보는 관점에 빠져있다. 나의 아버지와 등산을 갔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아버지는 내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절에 들어와 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씀했다. 당시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의미였을까. 40대 초반이 된 나는 어렴풋이 그 뜻을 알 것 같다. 아버지 역시 진리를 추구했다. 자신의 노력과 사회적 한계가 충돌할 때 깊이 고민하고 방황했을 것이다. 돌파구 또는 회피처가 필요했을 것이다. 누구보다 솔직하게 당신의 마음을 털어놓은 아버지를 떠올린다. 어째 그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면서 그와 더욱 많은 대화를 하고 있다. 여기에 글의 힘이 있다. 나는 쓰기를 통해 나를 만나고 나의 아버지를 만나고 스티브 잡스를 만난다.


나는 내가 되어가는 과정에 나를 맡긴다. 인생은 수련이고 수련을 해나가려면 도구가 필요하다. 나의 삶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반복되는 외국 생활? 좋지. 하지만 이는 외면적인 것이다. 한국이든 외국이든 내가 꾸준히 나를 발견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장비가 필요하다. 나는 이를 글쓰기로 본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나를 구원하고 있다. 세속의 구도자로서 나는 속세를 떠나지 않아도 진리를 추구하고 있다. 나는 왜 출근하는가. 나는 왜 회사에 가는가. 진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나의 존재의 궁극적 무한함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이런 자세라면 절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속세가 성스러운 공간이다.


글쓰기를 선 수행과 연결한 나탈리 골드버그를 뒤늦게 재발견했다. 어쩌면 나의 인생은 이런 방식으로 흘러간다. 어린 시절 접한 적이 있지만 당시에는 의미를 모른다. 그 의미는 훗날 새롭게 다가온다. 나이와 경험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근력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내게, 나탈리 골드버그가 다가왔다. 오랫동안 고미숙이 그랬다. 여전히 그렇다. 골드버그와 결을 함께하는 줄리아 카메론의 저서도 읽었다. 내게 주어진 삶의 진리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 삶의 진리는 80억 가지의 모습으로 발현될 것이다. 나는 나의 존재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80까지 산다면 나는 반환점을 돌았다.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다. 나는 내게 주어진 유한한 시공간을 무한으로 전환하기 위해 오늘도 바지런하게 움직이겠다고 결심한다. 쓰기 전과 쓴 후에 내 존재가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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