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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투표권은 공허하다.

by 박건우
투표하세요! 투표하지 않는 자, 불평하지 말라!


지겹도록 들어온 문구다. 선거철만 되면 일면식도 없는 정치인들이 내게 굽신거린다. 이 속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투표는 해야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여러 통계에 의하면 국민의 대다수는 후보자에게 한 표를 행사함에 있어서 공약이나 정책을 살펴보는 것은 뒷전이라고 한다.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후보자들의 정책이나 공약은 잘 모르고 미디어에서 비추어지는 가벼운 인상이나 소속 당 등 굉장히 표면적인 요인을 평가하고 투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저번 총선은 '정권 심판'이 크게 대두된 총선이라는 점에서 최근 대한민국 국민들의 초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가를 엿볼 수 있다.


어디에 투표하는 것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판단하는 것은 내가 할 일도 아니며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나는 그저 당신이 '정말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가?'라고 묻고 싶다. 선거와 투표는 민주주의 실현의 기본 중 하나이고 개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한 방식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을 했다고해서 딱히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지적한다. 당신의 '눈 먼' 투표는 어쩌면 안하느니만 못하는 한 표일 수 있다.

심지어는 투표하지 않는 것보다 나쁠 수 있다. 그 눈 먼 표가 당신, 그리고 사회에게로 돌아왔을 때 그 모습은 생각보다 추악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런 사람들이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모습은 참 재미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한 번 돌아보라. 혹시 내가 그런 투표를 하지 않았나? 혹시 이렇게 투표하고 '나는 민주 시민'이라는 선민의식에 빠지지는 않았는가?


왜 투표해야합니까? 라고 물었을 때 설득력 있는 이유를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투표는 민주 시민의 기본적 권리이니까요, 권리를 포기하다니 바보같죠."

이런 공익 광고에나 나올 법한 대답은 설득력이 없다. '바보같다'는 투표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투표의 이유를 대답하지 못하면서 투표에 대한 의무감을 가지는 것은 그저 당신이 세뇌당했다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과감히 투표 거부도 하나의 정치적 참여라고 생각한다. 다수결만이 절대적인 정의가 아니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투표 거부자들의 수가 많아졌을 때 그 사회의 기득권과 정치지도자들은 그 이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옳다구나하며 그대로 그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나아간다면... 글쎄, 그 사회는 이미 병들어버린 것 아닐까?


나는 결코 투표나 선거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투표하라! 자신의 뜻을 드러내라!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그 가치가 없는 것을 넘어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투표, 그리고 민주주의는 신이 아니다.

그 자체에 맹목적이지 말라. 본질을 보라.

구호에 매몰되지 말라. 선거와 투표만으로 민주 시민의 의무는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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