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 설마, 혹시 ?
꼴데로 말할 거 같으면.
프로야구 최초로
팀 누적 2000패를 돌파한 바 있습니다.
원년부터 2024년까지 이어진 총 43번의 시즌 동안
단 한 번도 승률 6할을 넘기거나 리그 1위에 오르지 못 했고요.
반면에 같은 기간 9번의 꼴찌를 기록함으로써 '조류동맹' 한화 이글스와 이 부문 1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특히 2001년부터 2004년까지는
4년 연속 리그 꼴찌라는 절체절명의 암흑기에 접어들면서 전설의 '8888577' 비밀번호를 생성시키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들불처럼 일어난 꼴데 팬들의 분노가 보이콧으로 이어지고 좌석 수 2만 7000여 석의 사직구장에서 열린 홈경기에 불과 69명의 유료 관중만이 입장하는 웃픈 일화가 탄생합니다.
( *2002년 10월 19일 한화 전 )
1984년과 1992년 우승, 그리고 1999년 준우승 이래
21세기 들어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적 없는 유일한 팀이자
제 아무리 용을 써봐야 시즌 초 봄에만 잠깐 반짝한다고 하여 '봄데',
그러다 결국 익숙한 순위로 돌아가 바닥을 친다고 붙여진 별칭, '꼴데'로 불리는 팀.
이렇듯 롯데 자이언츠를 향한 조롱과 굴욕의 역사는 유구하고도 다채롭습니다.
그런데 짧은 봄이 지고 폭염이 쏟아지는 여름의 한가운데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요상한 기류가 꼴데를 휘감고 있어요.
팀당 144경기를 치르는 시즌의 2/3 가량이 마무리된 7월 28일 기준, 꼴데의 순위는 자그마치 리그 3위.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호사가들은 떨어질 듯 떨어질 듯 하다가도 꾸역꾸역 순위를 지킨다고 해서 '꾸데', 이제는 한화 엘지와 완연히 3강 구도를 구축했다는 의미로 '롯데 삼강'이라 칭하면서 왕년의 아이스크림 브랜드까지 소환하고 있는 판국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각 팀이 기록한 득점과 실점을 대입해서 해당 팀의 예상 성적을 계산하는 공식인 피타고리안(Pythagorean expectation - 박스 맨 오른쪽 ) 승률에 따르면 꼴데의 적정 순위는 7위에 그칩니다.
오히려 0.568의 예상 승률을 기록한 삼성이 순위표 세 번째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타당해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꼴데가 예상 승률 0.483 보다 높은 실제 승률 0.558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박빙의 승부가 이어진 타이트한 경기가 많았고 그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2022년부터 마운드의 한 축을 담당했던 투수 찰리 반즈의 예상치 못한 방출과 주전 야수들의 연이은 부상으로 인한 이탈을 딛고 이뤄 낸 결과라서 더더욱 놀랍습니다.
전통적으로 주전, 비주전 간의 기량 차이가 크고 선수단 전체의 '뎁스(depth)'도 얇기로 유명한 꼴덴데요, 올해는 위기 때마다 적재적소에서 등장한 1.5군급 선수들의 맹활약에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입니다.
지금은 약간의 부침을 겪곤 있지만 시즌 초부터 유격수 자리를 지켜 낸 전민재를 필두로 이호준, 장두성, 김동혁, 한태양 같은 야수들과 이민석, 정현수, 김강현 등의 투수들이 일제히 포텐을 터트리듯 팀의 주축으로 올라 선 모습이에요.
게다가 찰리 반즈의 대체 선수로 입단한 알렉 감보아가 마운드의 중심을 안정감 있게 잡아주기 시작했고 시속 150Km를 상회하는 공을 뿌리는 홍민기의 혜성 같은 등장이 꼴데의 상승세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2017년,
이른바 '8치올(8월에 치고 올라간다)'의 기치를 증명하며 맹렬히 순위를 끌어올렸던 당시 후반기 페이스보다 오히려 지금의 분위기와 전력이 더 위력적이라서 올시즌엔 정말 뭔가 큰 사고를 칠 것 같은 기대를 품게 됩니다.
다만, 8년 만의 가을 야구, 즉 포스트 시즌 진출에만 그칠 것이 아니고 더 높은 라운드에 올라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바라보려면 에이스 박세웅의 분발이 절실합니다.
지금까지의 이닝 소화는 무난했지만 5.10이라는 ERA(평균 자책점), 1.50의 WHIP(이닝 당 출루 허용률)로는 단기전의 필승카드로 팀을 이끌어 가기에 역부족이거든요.
몸값 90억의 에이스답게 시즌 초의 좋았던 모습으로 반드시 돌아와 줘야 됩니다. 제발.
1984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를 앞둔 강병철 감독은 당시 팀 전력의 핵심이자 부동의 에이스였던 투수 최동원에게 시리즈의 1,3,5,7차전 선발 투수를 맡기기로 하고 그에게 준비를 지시합니다.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한 삼성에 맞설 수 있는 유일무이한 전략이었던 거죠.
정규 시즌에서 이미 팀의 284이닝을 책임지며 홀로 고군분투했던 최동원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정임이 분명했지만 우승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임을 직감한 그는 감독의 요청에 이렇게 대답하고 돌아섰다고 합니다.
아마도 올시즌 꼴데의 화려한 비상을 꿈꾸는 전국의 수많은 꼴리건, 아니, 꼴데 팬들의 염원을 담아내기에 가장 적절하고 의미있는 한마디가 아닐까 싶습니다.
...
그리고 최동원은 그 해 가을 한국시리즈 1,3,5,6,7차전에 등판하여 총 40이닝을 던지는 초인적인 기세를 발휘하면서 팀의 4승을 모두 책임졌고 마침내 꼴데에게 가슴 벅찬 첫 우승을 선사했습니다.